일본 친구가 일본 트위터 김연경 멋있다고 난리 났는데 그 중 카리스마 잔소리 시리즈라고 보내준것들
"피아노 때려치는 건 자유야. 근데 니가 하고 싶다매?"
"서빙은 됐으니까 주방 설거지 갔다와"
"내 수업 졸려? 세수하고 올래?"
"알겠지? 짠돌이 남자는 안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할머니 장례 때 검정양말 없는 사람 1명이 있어서 필요했는데, 상조업체가 낱개 포장된 제품을 노란 고무줄로 동여맨 거 내밀면서 묶음으로만 판다며 10개 강매 시도함. 진 빠진 자식며느리즈가 알았다고 했으나 개빡친 손녀(나)가 차라리 편의점 가서 사오겠다, 지금 이게 말이 되냐고 했더니 1개 팜.
나 처음 일했던 선배님도 이랬다. 하나 더 추가하면 첫 촬영 때 현장에서 내가 뭐 빼먹어서 큰일났다 싶어서 먼저 이실직고하고 얼른 해결해보겠다 했는데 내가 너무 안절부절하는 게 보이니까 혼내는 대신 "혼세야 진정해 해결 안 돼도 현장에서 다 대체할 수 있어. 아무 일 안 생겼다." 해주심.
방금 성당에서 한 친구 결혼식(혼배미사)에서 신부님 말씀. "자신을 서로 낮추면 아래 하가 둘이라 하하 웃을 수 있는데 둘다 자기만 위로 가려고 해서 윗 상이 둘 겹치면 뭐가 되겠어요? '썅' 소리 나오는 것이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홀리하게 울려퍼지는 찰진 발음.. 고고한 어투..
예전에 팀에서 어떤 소품 구비가 안 돼서 내 대본대로 촬영 못 해준다고 하길래 내 집에 있으니 갖다주겠다 했다가 선배한테 혼난 적이 있다. "니가 그러면 니 후배 작가들도 대본에 썼다는 이유만으로 소품 조달해야 한다"고. 정영주님도, 불편함 무릅쓰고 혼내주신 내 선배님도 너무 고마운 분...
방금 일어난 일. 신호대기 정차하던 내 차량 백미러를 유턴하던 버스가 들이받고 잠시 멈추는 듯하다가 (내가 경적 계속 울림) 그대로 가버림. 멀어지는 버스 동영상 찍어서 차량번호 확보하고 안전지대로 이동시킨 뒤 112에 신고함. 시간 있으면 바로 경찰서 교통사고조사계 방문하라해서 방문함.
성북구 ㄷ여고, 관악구 ㅁ여고, ㅁ여중, 관악구 ㅅ여고, 울산 ㅁ중에서 공통적으로 머리를 귀나 눈썹 위로 높게 올려 묶는 것에 대한 규제가 있다는 제보가 들어 왔습니다. 특히 울산 ㅁ중에서는 "목선이 드러나서 야하다는 이유로" 똥머리를 금지했다고 합니다.(현재 고등학생인 졸업생의 제보)
평생 근력 없다가 폴댄스 광인 됐을 때, 지하철 계단 올라와도 가뿐하고 조카(당시 6세) 에버랜드에서 한손으로 안고 웨이팅 가능하며 가전 택배 들일 때 힘들지 않고 버스에서 안정적으로 서있을 수 있는 게 정말 좋았다. 악력 좋으니 김장할 때 절인 배추 한 손으로 콱콱 짤 때 쾌감도 대박임.
선생님들 제발 톡을 하실 때 "혼세씨" 하고 답이 올 때까지 대기탄다거나 "할 말 있는데 언제 시간돼" 같은 연락을 삼갑시다. 간단한 용건이라도 요약하거나 왜 연락하고 싶은지 도입부 정도까진 보냅시다. 불안인은 운전중에 팝업알림을 눈으로 보고 미친듯이 갓길을 찾아헤매게 된다고요......
이해하기 어려운 타인이 있을 때 예전에는 "설마 나쁜 의도로 나한테 그런 말 한 건 아닐거야" 생각하는 데 초점을 많이 맞췄다면 요즘은 그냥 "이게 이렇게까지 오래 생각할 가치 있는 일이 아니다" 하고 산다. 현재, 여기에 집중해 살려고 하는 것만큼 가성비 좋고 시급한 일은 없는 것 같아.
인쇄소 부장님한테 가제본 뜬 거 보여드리면서 견적문의하는데 내지 촤라락 넘기시더니 "저는 이 종이 진짜 좋아해요. 냄새 너무 좋지 않아요?" 하고 한 번 더 거꾸로 좌라락 넘겨 향 맡고 웃으시는데 우와. 오랜 직업인의 소소한 행복감 수집하는 순간들 너무 좋아. 곁불 쬐듯 확 오는 온기.
기억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온전히 니 것인 니 몸에 새겨도 된단다.
열살의 내게 할머니가 자신의 타투 이야기를 통해 알려준 지혜대로 나는 마음껏 살고 있다. 하나도 후회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 모양이나 메시지가 좀 구린가 싶어지는 날이 올지 모르지만 그 구린것을 한것 역시 나의 역사다.
이거 맞다. 일단 나 스스로가 중고등학교때랑 지금 상당부분 다른 가치관과 취향을 갖고 살게 되는데 그때 친구들이 여전히 서로에게 잘 맞을 확률이 얼마나 되겠음? 각자 보는 풍경이나 생활패턴도 달라지는데. 35세 이후에 만난 친구들도 편하고 좋은 친구들 짱많임 알아서 삽시다요.
오늘 들은 지인 애기들 썰 너무 귀엽다. 11살 딸이 9살 딸을 소파에 앉혀놓고는 "어제 아빠가 혼을 내놓고 아침엔 또 밝게 인사하잖아. 이상하지 않아? 우리가 자는 사이에 어른들한테 기분 좋은 일이 일어나는 게 분명해. 우리 새벽까지 자지 말고 뭔지 알아내자" 했다고. 결의해놓고 물론 딥슬립ㅋㅋ
진짜 이런 게 재밌다고 패러디하는 것도, 이미지 모아서 바이럴하는 거 보는 것도 너무 고통스럽다. 동료시민들이 반지하에서 죽고 삶의 터전이 무너지고 차량이 침수되는데 이 재난의 어떤 요소로든 웃을 거리를 찾고 즐긴다는 게... 우리는 정말 어떤 사람들과 살고 있는 것인가.
할머니가 십대 시절 무모하게 새긴 네 개의 점이 그랬듯이.
얼마 전 또다른 고비를 넘긴 할머니가, 그래도 조금 더 버텨주었으면 좋겠다. 흩어져 사는 네 명의 팔에 찍힌 점이 흐려질 지도 모르고, 에휴 그냥 너무 슬프니까. 사랑하는 할머니, 이왕 살아남은 거 최소 100세 #가보자고!
최근에 처음으로 웹툰 정주행이라는 걸 했는데 몇몇 댓글 너무너무 폭력적이어서 깜짝 놀랐다. 창작물이 싫으면 안 보는 좋은 옵션이 있잖아요 왜 자기네 감옥에 가둬진 채 그림 그리는 노예마냥 모욕적인 말을 섞어서 디렉션을 주는 거예요? 타인을 교정하는 데 미쳐있는 사람 너무 유해하다.
타래 구구절절 맞말+백화점 식품관에서 사람 만나고 싶은 줄 암? 출산 전에 친구 만날 때 백화점 푸드코트에서 보자고 하던 사람 얼마나 되겠음? 유아차 프렌들리한 공간이 이 사회에 그정도니 그렇잖아 누구는 채광도 없고 유동인구 많은 데서 어디 느긋하게 기대지도 못하고 밥 먹고 싶은 줄 아나
마져 점심시간에 백화점 식품관에 밥먹으러갔는데
식품관에 유모차와 함께 온 엄마들이 잔뜩있는거보고
동료가
남편들은 일하고있는데 이런데와서 밥먹고 이따고해서
내가 밥믁으믄서 계속 왜 그럴 수 밖에 없나 한시간반동안 이야기해씀.
유모차를 밀고 스무스하게 운전할 수 있는 좋은 바닥이 없다.
프렌치프레스, 에스프레소머신, 모카포트, 네쏘 다 보유하고 있으나 용산구 1위 귀차니스트인 제가 유일하게 계속 쓰는 건 요거(베트남 커피핀) 하나뿐입니다. 진짜 편하고 원두커피고... 간 원두 컵 위에 올리고 물 붓고 그동안 딴짓하고 있으면 짜잔 내려와있음. 무동력이고 설거지 대간편.
저의 커피값 아끼는 법 공유합니다••
저는 웬만하면 밖에서 커피 안사먹습니다. 카페란 가끔 친구 만날 때 가는 정도..
소액 아껴서 뭐해~ 싶지만 정말 돈 세이브 많이 돼요.
커피머신, 핸드드립 다 필요 없고 ‘베트남 커피 드리퍼’ 하나면 됩니다. 커피 필터같은 부가적인 지출 필요 없습니다.
책임자 사과 전에 보상금 먼저 언급해서 피해자 유가족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유도하고, 애도를 내세워 일상을 압박해서 사건에 대한 피로감을 높이고. 이전에 봤던 수법 그대로네. 이럴수록 가장 중요한 질문을 의식적으로 공유해야 한다.
그래서, 그 날 이태원에는 왜 그렇게 경찰이 적었냐고.
20대때 온라인으로 만난 운동인증 단톡방이 있는데, 8명의 여성이 함께하고 있다. 어제 생각해보니 벌써 9년차다. 이 방의 누군가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나처럼 비혼선언을 하기도 하고 그랬다. 9년째 여성 8인의 일상을 실시간으로 듣게 된 것은 나를 엄청나게 성장시켰는데,
우리 아빠임. 우리집은 엄마 아빠 다 충청도 출신이고 나도 대전 출생인데 양가 어르신 대부분의 충청도화법이 유머인 와중에 유독 아빠는 엄마 무안 줄 때 이 화법 진짜 많이 쓴다. 웃긴 점은 사람 기분 상하게 그런 농담 하지 말라고 그러면 수긍 안 하면서 '방금 그거 진짜 재미없다' 하면 그만함.
스마트폰도 노트북도 없었던 할머니는 팔뚝만 보면서 친구들을 추억하며 견뎠을 테다.
엄마도 모르는 할머니 타투의 비밀을 어린 시절부터 알고 있었던 나. 엄마는 몸에 세 개의 타투를 가진 나를 늘 흘겨보고 타박했지만 사실 타투의 상징성은 할머니가 엄마를 건너뛰고 내게 가르쳐준 것이다.
다만 일제강점기 만주로 건너가서 간호사를 하던 시절 만나, 언제 또 살아서 만날지 몰라 생살에 잉크를 묻혀 꿰면서 서로를 새긴 마음이 절절하고 폼난다. 할머니는 당시 서로 마음을 주고 받은 의사 선생님도 있었댔고, 지금도 만주 시절을 떠올리며 간단한 중국어와 일본어 단어를 말한다.
나 지금 팟캐스트 녹음하다가 너무 충격적인 얘길 들었다 S들은 머리 감을 때 아무 생각을 안 한대... 게스트랑 나랑 다 이해 못했는데 친구한테 전화연결 하니까 거기 있는 사람들 다 아무 생각 안 하고 머리만 감는대... 이게 가능하다고? 아니 N이고 S고 나발이고 그게 돼?
강아지랑 살아보니까 강아지랑 살지 않는 사람만이 할 수있는 일이 있더라. 접종 전의 아기강아지를 단기임보해준다든가 장거리 이동봉사를 한다든가 종일 보호소 봉사를 한다든가. 사람 키우는 거랑 똑같이 한 강아지를 키우는 데도 온 마을 필요한 거 맞음. 당장 입양 못 하는 분들 슬퍼하지 마세요.
이후로 장례 내내 누군가 '상주분 계신가요' 소리 날 때마다 내가 상주라고 부모님 찾지 말라며 벌집총각처럼 달려나가는 도라이가 되었으며... 장례 다 끝나고 자식며느리즈가 공식적으로 이 역할을 매우 고마워했음. 하지만 누군들 그런 걸 하고 싶나요? 상조업체들 정신차려라...
용산구 관할 경찰관 소방관들이 이 참사를 예측 못했을리 없는데 그 인력 가지고 무슨 심정으로 어제 도로 통제하고 사상자 후송을 했을지. 서울 한복판에서 사람 150명을 잃었는데 지금 개인 탓을 하고 싶냐고. 놀러 나가서 죽은 개인이 문제겠냐, 놀러 나갔다간 살아돌아오지 못하는 국가가 문제지.
할머니의 타투에 비하면 어린 시절 아빠가 불러준 노래를 팔에 새긴 내 타투는 다소 애송이 같지만, 그래도 80년을 사이에 두고 할머니와 나만의 비밀이 있다는 점은 두고 두고 기쁘다. 내 팔에 새겨진 것은 꽃이지만,비슷한 위치에 새겨진 할머니의 점들과 열살 때 그걸 두고 나눈 대화를 기억하겠지
남자배구 국제성적이 안나오니 배협이 국제대회 개최를 추진한다는(...) 기사. 역시나 또 여자배구 언급하면서 "남자배구가 기를 못 펴고 있다"고 언급. 싸움 붙이지 말라고. 가만히 있는 여배팬들 분노유발하지 말라고요. 나는 왜 실명으로 덕질을 해서 할 욕을 못하나.
시발
아니 시발 쟤네가 먼저
달리기를 못했던 나는 운동회에서 늘 꼴찌를 했는데 엄마가 늘 결승선에 기다리다 안아줬다. 꼴찌인데 왜 잘했다고 하냐고 물었을 때 엄마는 "못하는데 끝까지 했으니까 잘 한 거야."라고 했다. 같은 말을 엄마에게 돌려줄 수 있어서 기뻤다. 떨어지면 어때? 못하는 걸 끝까지 한 게 얼마나 멋지냐고.
여성창작자모임 진짜 필요하다. 나만 해도 걸어서환장속으로 북토크에서 중년 남성한테 "요새 이런 책 쓰는 분들 다 여자던데 남자들은 뭐 할 때 여자들은 여행다니고 책쓰는 걸까요?"소리 들어봤고요. 여성창작자 한정 특수하고 기괴한 상황 진짜 존나리 많아서 동지들 한번 만나야해.
85년생인 나만 해도 싸이월드 시절부터 시시콜콜한 얘기 온라인에 조잘대는 게 삶의 일부다. 물론 안 그런 사람도 있겠다만. 가끔 너무 힘든데 누굴 만나서 할 얘기도 아니고 받아들여질지도 두려울 때 SNS에 끄적이고 어떻게든 살아가는 거 조롱할 일 아니고 당연한 거라 생각함.
몇살이냐고 해서 3개월이라고 하니까 굳이 이미 키우는(임보인 건 모르시니) 내 면전에 "엄청 크겠네. 아휴 이런 애는 집안에서 못 키워" 하심. "저도 저희 엄마가 집안에서 키워주셨어요^^" 하고 친절하게 말씀드렸다. 우리 공주 어디 가서 기죽을 필요 없어 니 존재가 늘 정답이야💙
매년 이태원 놀러나갔다가 아무 가게도 못 들어가고 택시도 못 잡고 우리집까지 걸어 오는 친구들이 있었고 용산구 사람들한테 할로윈은 추석 귀성길 톨게이트같은 그런 날이었다. 근데 대통령 출퇴근에 용산경찰인력 다 가있는 와중에 왜 다친 사람들 탓을 해? 경찰이고 시민이고 뭘 할 수 있다고.
사고처리 완료될 때까지 지켜보고 어떻게 마무리되든 정보전달 차원에서 추후에 글로 한 번 써보겠습니다. 여튼 여러분 사고 발생하면
1) 내비게이션 캡쳐(제일 정확함. 인근 상호명으로 위치특정 가능)
2) 직후 주변 전체 녹화, 차량번호 보이게 줌 한 번 필수
3) 블박 확인
꼭 하세요...
프리랜서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은 "나는 프리랜서로 밥벌이 할 수 있다"는 믿음인 것 같다. 나는 내 밥 먹일 수 있다, 나는 이 분야에 능력이 있다는 믿음. 그게 있어야 일이 되고, 정당한 대우를 요구하고, 내가 소진됐을 때 그만둘 수도 있는 듯. 그게 사실인지는 중요치 않고 일단 믿어주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