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서는 우리가 사는 세계를 사바세계라고 한다고.. 사바세계란 괴로움을 참고 사는 세상이란 뜻이라고 한다지. 인생을 사는 그 자체가 고통이고 괴로움이라고... 나이들면서 알았다. 기본 색은 고통이고, 중간중간 아니 어쩌다 행복이 끼어 있는 그런 형국이라는 것을.. 그러니 행복에 연연하기
"마흔이 넘어서 알게 된 사실 하나는 친구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거예요. ..친구를 덜 만났으면 내 인생이 더 풍요로웠을 것 같아요. ..맟출 수 없는 변덕스럽고 복잡한 여러 친구들의 상황과 각기 다른 성격, 이런 걸 맟춰주느라 시간을 너무 허비했어요."-김영하, <말하다>-
내가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까지 넘치도록 받았다는 사실에 내가 작아지다가도 몸의 구석부터 바람이 들어 풍선처럼 빵빵해진다.
초등학교 방학 때, 병천 할머니께 가면 정거장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나와 계셨다.
할아버지는 흰색 두루마기를 입으시고 내가 내리길 그토록 기다리셨다.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고 최승자 시인은 말했는데 또 한 번의 고비가 오는 건 예순 살인 것 같다.
열심히 달려 왔지만 이렇게 계속 달릴 수는 없다는 판단을 해버리는 순간과 마주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살 수도 이렇게 죽을 수도 없는 예순은 더 당황스럽다
많은 벌에 물려 119에 싵려왔다.올해 두번째 응급실행이다.
머리가 너무 많이 물렸고 온몸에 두드러기가 올라와 119올 때까지 가려움과 통증이 몰려왔다.
주사와 링거 맞고 그래도 통증이 심해 다시 진통제 맞고 집에 간다.
삶과 죽음이 종이 한장 차이다. 모두 무탈하시길..
할머니는 잠자듯이 나를 데려가 달라며 만트라처럼 말씀하셨다. 나 어려서부터 들었다.
할머니는 정말 주무시듯 돌아가셨다.
서울 우리집에 사시다 작은 아들이 보고싶으시다며 시골에 내려가셨다. 부엌에서 불을 때시다 머리가 아프시다며 방에 누우셔서 돌아가셨다. 그렇게 애절하게 원하시더니..
이 구두를 평생 신고 싶은 이유는 신을 때마다 아버지를 보는듯해서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흰운동화와 이 구두만 신을 수 있었다. 아버지는 많은 자식 공부시키느라 빠듯한 살림에도 고딩 때 이 구두는 꼭 맞춰주셨다.
십년 도 전에 산 구두인데다 외출시 구두의 9할은 이 구두를 신기 때문에
바쁘다는 이유로 가끔 들어와 트친님들의 일상을 읽고 나가기만 했었지요.
그러다 벌에 많이 물려 119에 실려가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트친님들에게 글을 올리게 되더라구요. 위로 받고 싶은 마음이 발동했나 보더라구요. 그리고 이내 미안했어요. 바쁘다고 글도 자주 못올리다가 이런 일은 올리다니.
국민학교 때, 여름방학이 끝날 즈음이면 난 할머니 옆에서 매일 밤 울었다. 할머니도 같이 우셨다. 난 서울로 가야 하니까.
할머니 사랑을 이렇게 많이 받아 지금도 "할머니" 하고 발음하면 비녀 꽂으신 할머니가 "아가, 왜?"하고 웃으실 것 같다. 오늘 비가 와서 그러나 왜이리 그리움이 쌓이는지...
장영희 교수가 엄마에게 이 편지를 남기고 다음 날 세상을 떠났지.
"엄마, 미안해. 이렇게 엄마를 먼저 떠나게 돼서. 내가 먼저 가서 아버지 찾아 기다리고 있을게.
엄마 딸로 태어나서 지지리도 속을 썩였는데 그래도 난 엄마 딸이라서 참 좋았어.
엄마는 이 아름다운 세상 더 보고 오래오래
평소 거북목이 있다는 소리를 들으셨거나 두통이 있다면, 후두신경통을 의심해볼 수 있기 때문에 아래 영상처럼 후두하근(Suboccipital Muscle)을 마사지해 주세요.
(후두하근은 아래 이미지를 참고해주세요.)
컴퓨터 또는 휴대폰에 집중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목이 앞으로 움직이고 중력에 의해서
가슴 찡한 일 하나!
얼마전, 할머니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우리 가공품을 구매한 80이 넘은 할머니라고 소개하셨다. 상품속에 보낸 손편지를 읽고 감동스러워 전화하셨단다. 내 편지 속 시와 글귀들이 늙고 아는 것 없는 사람이지만 참으로 좋으셨단다. 아들이 대신 주문해준 것이라며 바쁜 사람붙들고
내게 가장 소중한 친구가 미국에서 산골을 찾아왔다. 2박 3일일정인데 오늘이 마지막 밤이다. 친구 앞에서는 웃고 돌아서면 눈시울이 붉어진다. 내 안에서 이런 말이 자꾸 튀어나와서..
'이제 살아 생전에 너를 볼 수 있으런지...'
내가 만든 소품을 선물로 전해주고 별채에서 내려왔다.
이곳으로 귀농해서 좋은 분을 만났었다. 기부도 많이 하시고 모두가 좋아하는 분이었다. 작년 명절에는 좋은 한우를 얼마나 많이 보내주셨는지 온가족이 놀랐었다.
암말기라는 진단을 받으시고 조금 전에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내일 일을 접고 장례식장에 간다. 잠이 안온다.
이순자님의 <실버 취준생 분투기>를 어제 읽고 내내 마음이 일렁거렸다.
황혼이혼으로 자유를 얻었으나 경제력은 준비되어 있지 않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신 흔적들을 읽어 내려가며 어딘지 모르게 우리의 앞날과도 같은 느낌도 들었다. 미소가 참 고운 분인데 돌아가셨다는 글을 접하고 또 한번
저 혹시... 손가락이 왜 열 개 인지 아세요?
저도 몰랐는데 함민복 시인이 알려줬어요.
"손가락이 열 개인 것은
어머니 뱃속에서 몇 달 은혜 입나 기억하려는
태아의 노력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함민복 <성선설>--
달랑 한 문장으로 된 시가 이렇게 정수리를 뻐근하게 하네요.
안녕하세요?
이번 울진산불로 제게 많은 염려와 격려와 기도를 해주셨던 분들께 일일이 답장을 드려야 하는데 이렇게 인사드리게 된 점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세계적으로도 인정받은 금강송 군락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많이 불안하고 안타까웠습니다.
예전에도 불이 난 경험을 두
'나이들면 애가 된다'는 말을 하나하나 실감하고 있다.
우선 우리에게도 놀이터가 필요하다. 왜냐 하면 지금껏은 가족을 위해 앞만 보고 내달렸는데 지금은 나를 위한 놀이터가 필요하다. 자식에게 기대지 않고 혼자서도 잘 놀 수 있는 놀이터. 그게 정원가꾸기가 될 수 있고, 그림그리는 일이 될
"농부가 되었든 대학교수가 되었든 사람이란 탐구하는 력이 끝나면 그때부터 늙음과 죽음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꼭 책보고 논문 쓰는 게 아니라 인간사를 진지하게 들여다 보며 반성하고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탐구이거든요. "-법정과 최인호의 산방대담, <꽃잎이 떨어져도 꽃은 지지 않네>-
몇 달 전에 큰 차가 오는 공사가 있었는데 기사분의 잘못으로 결국 나무가 쓰러졌다. 귀농주동자가 내가 이렇게 좋아하는 장소임을 인지하고 나무를 세우는 계획을 세웠으나 전문가들이 소생불가능 판정을 했다.
미안하고 마음이 스산하다. 살다 보면 내가 어쩌지 못하는 일이 생긴다.
아주 오래전, 내가 힘들 때,
나이 많은 선배가 말했다.
"나중에 웃으며 옛말 할 날이 올거야."
나는 그런 날이 올까 싶지 않았다. 이건 사람과의 문제라.
그런데 그런 날이 오더라. 그리고 옛말처럼 내가 웃으며 말하고...
이제 내가 이 말을 하는 나이가 되었다.
그러니 힘들 내시길..
오늘 제가 잔여백신 접종을 했어요.
갑자기 날짜가 정해져서 겁도 나고, 마음의 준비도 안되어서 어쩌나 했는데 딸이 멀리서 용기주고 다 챙겨주고...
잘 맞고 와서 쉬고 있어요.
저녁 먹고 잘 쉬고 있어요. 물도 많이 챙겨 먹구요. 염려해주시고 응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덕분입니다.
손목이 많이 아파 어제 병원에 갔었다. 그곳에서 이웃 마을로 귀농한 지인을 만났다. 허리가 너무 아파 왔다며. 근데 오늘 사람을 사서 고추따는데 밥을 다 해줘야 한단다. 그 소리를 듣고 맘이 편치 않아 손목보호대감고 갔다. 일꾼들 식사 끝나고 설거지 해주고 오니 마음이 날아갈 것 같다.
아버지는 가수가 되고 싶어하실 정도로 노래도 아주 잘하셨다.
생활력은 엄마가 강했지만 아버지는 이런 쪽으로 촉이 발달하셨다. 그러나 여섯이나 되는 자식들때문에 하고 싶은 것을 못하시고 돌아가셨다.
'나로 인해 아버지가 그러셨구나' 하는 생각이 요즘 나를 지배했다.
엉엉 울었다.
아버지는 위천공으로 수술하시고 담배를 끊으셨다. 그 후로 은단을 드셨다. 은단곽을 손바닥에 톡톡 두드리면 은색 알알이 아버지 손바닥에 모였다.
내가 대딩일 때, 아버지는 내 손을 잡으시더니 손바닥에 은단을 톡톡 주셨었다.
그게 좋은 건 아니어도 막내 딸에게 주고 싶으셨던 거다.
세월이
종갓집 맏며느리인 엄마는 머슴아저씨까지 14명인가의 밥을 하느라 얼마나 고생스러웠을까 요즘 가꾸 생각난다. 한번은 콩나물을 다듬는 엄마 옆에서 같이 다듬다가 이내 싫증이 나서 잠이 들었다. 자고 났는데도 엄마는 콩나물을 다듬고 계셨었다. 그때 난 어른이 안되기로 마음먹었었다.
오늘 3차 접종고 ��어요.
어제 밤과 새벽에 눈이 와서 걱정을 했어요.
원래는 모더나를 맞는 것인데 백신이 없다며 화이자를 맞아야 한데서 맞았습니다. 주어진대로 맞는 게 맞다는 생각에서 .
사람도 많고 어찌나 정신없는지 전쟁통이 따로 없었어요.
다들 이곳에 보고를 하셔서 저도 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