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관계가 있다. 서로가 익숙해져 이에 의존한 탓에 지리한 시간이 지난 후 이것이 비효율적인 것으로 밝혀지거나 변화의 필요성이 제기되었을 때에도 결국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 관계. 정재현이 김도영에게 그랬고, 김도영은 정재현에게 그랬다. 거슬리지 않으니 고민할 필요가 없고, 질리지 않으니 끊어 낼 필요 따위 없는, 그러니까 그건. 암묵적 동의가 깔린...

*11년째 연애중인 재도의 ���충우돌 스캔들 이야기. 그와 마주친 사람은 누구나 한 번쯤 그와의 특별한 인연을 꿈꿔왔다. -얘, 너는 아폴론 같다. 화면 속 오스카 여우조연상을 받은 노배우가 그의 외양을 찬양한다. 카메라에 비친 그녀의 눈빛이 빛 발한다. 최근 영화씬에서도 저런 얼굴은 흔치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의 말에 쑥스러워하며 애써 미소 짓는...

warning 불쾌한 표현 및 범죄 소재가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01.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던 2월. 김도영은 산에서 태어났다. 산신령 같은 영적인 존재였으면 좋았겠지만 출생부터 불우했다. 어미는 산부인과가 아닌 동네 뒷산에 김도영을 낳고 도망쳤다. 배설에 가까운 행위에 한 줌 핏덩이의 면역 체계는 속절없이 무너졌다. 누가 언제 코를 풀고 방뇨했을지...

@ 재업입니다 1. 눈치 없이 도시동 끄트머리 오르막에 있는 한국대는 주민 사람들에게 핫 플레이스로 꼽혔다. ‘날아오르라 한 대인!’ 교문 위에 걸린 플랜카드에는 고딕체로 쓰인 구린 타이틀이 걸려있었고 건물은 누가 발로 차면 무너질 듯 낡았지만, 인내심을 갖고 쭉 들어가면 벚꽃 명소가 나온다. 주민들 사이에 암암리 퍼진 명소는 어느 순간부터 인근 지역...

이놈의 좆 같은 의사 때려치워야지. 도영이 본과 1학년 때부터 줄기차게 읊어온 레퍼토리였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 오늘은 노예 탈출 프로젝트 대망의 1일 차였다. 일 년 단 14일의 휴가 중 무려 5일을 여행에 투자하기로 한 것이다. 남들이 보면 고작 5일인가 싶겠지만 도영에겐 큰 결심이었다. 인턴부터 내과 2년 차가 될 때까지. 도영이 휴가 내내 한...

요즘 회식 일로 선호하는 날은 목요일이다. 금요일은 개인 약속이 있을 게 뻔하니, 적당히 목요일에 마시고 놀자. 물론 다 꼰대들의 생각이다. 나 역시 술잔을 기울이면서 이 모임을 주도한 주 팀장을 바라봤다. 저 새끼는 집에나 좀 들어가지. 이따위 거지 같은 모임을 만들어서 내 피 같은 목요일 저녁을 날려버릴까. 하여튼 팀원을 괴롭히는 것도 갖가지였다....

可視非可視猶豫樂園地帶 * 쭉 흰 화면으로 읽는 걸 권장합니다 생각해 보면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비가시 세상을 포함한다 해도 남자는 그의 시선을 단숨에 휘어잡는 존재였다. 담벼락 바깥은 그저 그늘이라 서늘했고 보도블록 위는 그저 양지라 뜨거웠다. 순간 보통의 세상을 보았다. 뙤약볕이 쏟아져 내리는 것은 케케묵은 언어들보다 훨씬 산뜻했다. 종일 사랑을...

ㅊㅔㄷㅐㅍㅐㄷㅣ 체육교육과X패션디자인과 입에 핀 물고 치수 재고 가봉하는 김도영 보고 싶다. 졸라 피곤한 눈으로 예민하게 정재현 몸 훑어봤으면 좋겠음… 훈련 막 끝나고 와서 뭐 차려입을 시간이 없어서 후디에 반바지 차림으로 대충 입고 갔는데(좀 늦음) 가타부타 말도 없이 들어오자마자 구름 벽(예대 작업실 후진 벽지) 앞에 멀뚱하게 세워놓고 한참 뚫어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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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하셨습니다. 이 교수가 수술을 마치고 수술복을 집어 던지고는 나갔다. 무려 14시간 동안의 수술은 이교수, 그리고 옆에 있던 도영에게도 진한 어깨 통증을 주었다. 도영은 어깨를 만지작거리며 수술방을 나섰다. 밥을 두 끼째 굶었다. 정신이 몽롱한 채로 의국에 발을 들였다. 쓰러져있는 몸뚱아리가 하나, 둘.. 도영은 눈을 비비고 선반에서 컵라면을 하나...

"선생님 잘 지내셨죠?" "그럼요 안 그래도 요즘 통 연락이 없길래 궁금하던 참이었어요" 앉아요. 코 끝에 걸친 안경을 끌어올린 영호는 모니터 속 재현의 차트를 훑었어. 2010년 4월부터 한 달 주기로 꼬박 11년이 기록되어 있는 차트를. "선생님," 악몽. 따로 병명을 정의할 수 없는 악몽에 시달려 병원을 찾은 재현은 11년이 지난 지금. "저 이제...

솔직한 거짓말 솔직하지못해서 “안녕하세요?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테이크아웃 할게요.” “네.” 누군가 학창 시절을 돌이켜 봤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게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한 사람의 이름을 말할 것이다. 정재현. 그러나 나는 단 한 번도 정재현의 이름을 살갑게 불러 본 적이 없다. 잘 알진 못하지만, 아주 모르지는 않는 사이. 그게...

배우 재현 X 호텔 부총지배인 도영

재도

시작은 안주 세 개 이만 천 원짜리 호프집이었다. 오뎅탕이랑, 콘치즈랑, 케이준 샐러드. 정재현은 치커리가 싫었다. 못 먹는 건 아닌데 콘치즈랑 오뎅탕을 앞에 두고 굳이? 그런데 그 애는 치커리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엉덩이 붙이고 있는 내내 초록색 줄기만 골라 씹어 먹는 게 대충 프레쉬한 입맛을 가지고 있네 싶었다. 그래서 생긴 것도 프레쉬 한가....

지지부진한 3월과 함께 새 학기가 시작됐다. 유난히 자잘하게 붐비는 것들이 즐비한 시기. 늘 그랬듯 3월은 계절이 교체되는 봄과 특전처럼 딸려오는 신입생들 또한 함께였다. 확실히 3월의 1학기는 갓 성인 택갈이를 마치고 몰려든 눈빛 빠릿한 애새끼들의 기운 때문인지 허허벌판인 캠퍼스에 배로 활력이 돌았다. 어딜가나 소란했고 시끄러웠고 유별났다. 처음에는 딱...

쟤네 둘이 사귀나봄

재도

배우 재현 X 호텔 부총지배인 도영

이른 아침부터 김참의 댁이 왁자지껄했다. 음식하는 소리, 구경꾼들 떠드는 소리, 돼지소리며 닭소리까지 우렁차다. 첫째 아들 혼례날보다도 더 들썩이는 오늘은 김참의의 둘째 아들, 아원雅菀 김도영의 혼례날이었다. 큰아들보다 둘째 아들의 혼례를 더 거하게 치르는 일이 흔한 것은 아니었으나 이번만큼은 다들 그럴만하다 여겼다. 둘째의 혼인 상대가 다름 아닌...

그냥 오늘 보니까 막 형 좋아서 죽겠는 티 못 감추고 줄줄 흘리고 다니는 정재현 너무 보고 싶고 이런 건 자고로 캠게여야 하는 무슨무슨 법이 있으니까 1살 차이나는 재도로 신입생 들어오던 날부터 김 선배랑 사귀는 듯 안 사귀는 듯 엉겨다니다가 김 선배 먼저 마음 자각하고 군대로 도망쳤는데 정 후배 어떻게 나한테 말 안하고 군대를 갈 수 있냐고 화 존나...

동방의 작은 나라, 대한민국은 대한제국을 이어 입헌군주제를 유지하고 있다. ‘군주는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로 설명이 가능한 입헌군주제였지만, 입헌군주제의 형태를 가진 국가마다 그 현황이 다르듯 대한민국 역시 그 맥락이 조금 달랐다. 조선의 피를 이어받은 왕족의 혈통이었기에 황실의 권력은 높았고, 황제는 통치에 직접적인 관여를 하지만, 헌법 아래 작은...

재도

사내연애는 안 돼요. BGM. XXX - LANGUAGE (00:30까지만 무한재생하고 싶은데..) 술에 꼴아 테이블에 쓰러진 동료를 보면서 도영은 새삼 생각했다. 도대체 사내연애는 왜 하는 거지? 처음 깨달았을 땐 대학 시절. 절친 태영이 어쩌다 보니 같은 과 존예 미연과 2개월 간신히 사귀었지만, 결국 벤츠한테 밀려나 과 생활이 좆망했을 때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