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은입니다>를 읽고 있는데 충격적이다. 지난 시대 영주가 따로 없었다. 봉건성이 철철 넘치는 일상을 보내면서, 입으로는민주, 진보, 평등, 노동 존중을 말하는데 그런 것들이 그럴 듯하게 받아들여지는 구조와 환경을 바꾸지 않는 한 민주주의의 성숙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일독을 권한다.
“국민의힘보다는 우리가 낫잖아!” 민주당의 유일한 무기다. 비판자에겐 “그럼 국민의힘에 정권이 넘어가길 바라냐”고 윽박지르면서 노동과 민생문제는 국민의힘과 거의 똑같이 한다. 차이가 없어 국민의힘에 권력을 넘겨주게 되면 그 책임이 자신에게 있음에도 비판자 탓을 할거다. 참 쉽게 정치한다.
더불어시민당 33.35%
+열린 민주당 5.42%
=38.77%
의원수 183명(61%)
38.77% 득표로 61% 장악! 칼만 안 들었다. 이 당 이름이 하물며 ‘민주’당이다. 이젠 “야당이 발목 잡아” 핑계도 없어졌는데 새 국회는 선거법을 비례성 원칙에 맞게 고칠까?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자.
권력에 대한 견제와 비판은 민주주의의 생명이다. 오늘 문정권 지지자들은 권력에 대한 그 어떤 견제나 비판을 용납하려들지 않는다. 야당(정치)은 토착왜구, 언론은 기레기, 검찰(법치)은 절대악으로 규정함으로써 문정권을 모든 견제, 비판에서 벗어난 성역으로 만들었다. 민주주의 위기 상황이다.
4년 전 우리가 촛불을 켰을 때 4년 뒤 오늘을 기대했을까! 마침내 수구세력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겠구나 했는데 이게 웬걸! 그들이 돌아오네! 실로 웃픈 건 이렇게 되면 안 되겠기에 현 집권세력에게 비판을 퍼부었던 것인데 이렇게 된 걸 자기들이 아닌 비판자들에게 들씌우고 있다는 점이지~
삼성해고자 김용희 씨 철탑 농성 322일.
공감능력에 의한 연대는 진보의 중요한 가치다.
그런데 조국 부부에게 감정이입하여 검찰에 분노하는 사람은 많지만, 김용희 씨에게 감정이입하여 삼성재벌에 분노하는 사람은 극소수다.
사람들의 처지는 조국 부부와 김용희 씨 중 어느 쪽에 가까울까?
기소 요건인지 아닌지는 2차적이다. 불평등의 세습이라는 문제와 함께 교육 자체의 죽음에 관해 물어야 하지 않을까. 정유라와 견주기도 하지만 최순실은 교육자가 아니었다. 아무리 과거 신민교육의 대상이었던 학생들이 오늘 신자유주의 아래 시민교육을 건너 뛰고 고객이 되었다고 하지만...
자발적 복종보다 두려운 일은 없다. 노예가 노예인 줄 모르고 주인 걱정하는 일이 제도 노예가 있던 옛 시절보다 오늘날 더 심해졌다. 문제의 심각성은 노예임에도 제도노예가 아니므로 자신이 노예인줄 조차 끝내 모른다는 점에 있다. 제도 노예는 적어도 자기가 노예인 줄은 알았다.
귀국 후 칼럼이나 sns 상에서 내가 가장 많이 받은 댓글은 “파리로 돌아가 택시운전이나 해라”다. 흥미로운 건 이명박근혜 정권 비판글을 썼을 때나 노무현/문재인 정권 비판글을 썼을 때나 똑같다는 점이다. 이젠 업그레이드를 좀 하면 어떨까. 식상해서 아무 느낌이 없어요.
A. 나는 동성애 반대: B. 국민 동의 필요
하나는 자신의 무지를, 다른 하나는 국민 뒤에 숨는 기회주의자의 면모를 솔직히 드러낸다.
19세기 노예해방과 여성의 정치 참여 논란 때도 “반대 : 국민 동의”로 겉은 다르지만 속은 같은 두 다수파가 정치의 장을 장악해 미래니 진보니 역사니 떠들어댔다.
이분들은 왜 정권을 장악했을까요?
보이지 않는 사회적 연대의 실현이 정치의 소명이라고 말한 분이 계셨는데(타계하셨어요), 그걸 위해서인가요? 외람되지만 아닌 것 같아요. 왜냐구요? 도무지 이분들의 정치철학이 뭔지 모르겠어서요. 그냥 정권 장악이 최종 목표인 분들 같아요...아닌가요?
동아일보가 공개한 ‘청와대 선거개입의혹’ 사건 공소장은 청와대 비서실이 문대통령의 ‘마음의 빚(30년 친구에 대한)’을 덜어주기 위해 무척이나 열성적이었음을 말해준다. 촛불정권이라면 그런 열성을 노동, 부동산, 교육 등 민생 현안에 보여주었어야 했다, 에고! ‘마음의 빚’이 뭐길래!
산재 위험이 있은 작업장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자식으로 둔 국회의원이 몇 명만 있었어도 제대로 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이미 제정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이 점만 봐도 현재의 선출제보다 추첨제가 더 민주적이라는 것은 명약관화한 사실이다. 추첨제로 바꿔야 한다. 비용도 별로 안 든다.
이상한 생쥐들의 나라 : 생쥐들은 대충 알고 있다. 국회가 돈 많고 힘 세고 학벌 좋은 자들이 서로 적대하면서 공생하는 놀이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그들이 4년마다 남발하는 생쥐생(민생) 공약들이 거짓이라는 것도. 그래도 또 그들을 뽑는다. 한 번은 검은 고양이를, 다음엔 흰 고양이를...
그래도 구기득권세력보다는 신기득권세력이 낫지 않은가. 그럴 것이다. 구기득권세력은 워낙 말도 안통하는 막무가내인데 비해 신기득권세력은 그래도 말이 통하는 편이고 공약도 잘 내놓는다. 문제는 그 공약을 거의지키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인민은 “희망없음”과 “희망고문” 사이에 포획돼 있다.
힘센 미디어 장사꾼들의 노이즈 마케팅과 힘없는 지식인의 현실 참여를 같은 기준 위에서 판단할 수 없듯이, 권력을 장악한 세력과 그렇지 못한 세력에 대한 비판도 같은 기준 위에 서면 안 된다. 양비론이 그렇듯이, 같은 기준 위에서 판단하는 것은 결국 힘센 자, 권력자에게 복무하는 것이다.
보편성은 민주주의의 본질이다.
만약 미통당과 그 위성정당이 39% 지지로 61% 의석을 지지했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이번처럼 민주당이 39% 지지로 61%를 가져갔을 때, 위의 경우와 똑같은 반응을 보일 줄 알아야 참된 민주주의자라 할 수 있다.
민주당과 그 지지자들은 민주주의자인가?
사참위법이 개정돼 사참위의 활동기간이 2022년 6월까지 연장되었다. 세월호 유가족의 희망고문 기간이 그만큼 늘었을 뿐이라는 우려가 드는 것은 사참위의 권한이 지금까지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내 우려가 우려에서 끝나지 않고 사실로 드러난다면 박주민 의원은 정말 나쁜 인간이다.
검찰 개혁의 대의를 부정하지 않는다.
가령 지금도 허공의 새가 되어있는 김용희씨나 대법판결에도 불구하고 집단해고된 톨게이트 노동자들에 대한 연대동력은 1/100 도 되지 않는지, 우리의 관심과 연대는 왜 아래나 옆으로는 향하지 않고 상향의 일방으로만 작용하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노동존중사회? 과거 권위주의정권은 노동자를 감옥에 가두었지만 손배 가압류로 노동자들의 삶을 피폐하게 하진 않았다. (권위주의 정권이 더 좋았다는 얘기는 아니다. ) 이 악법이 이른바 촛불정권 4년째에도 시퍼렇게 살아있다는 게 놀랍지 않은가. 공수처법에 대한 관심의 1/10 만 있었어도!
2년반 전 예멘난민들이 제주도에 왔을 때 테러범, 성폭행범이 집단으로 몰려온 듯 70만 넘게 반대 청원하고 난리를 쳐댔는데 그들이 문제 일으켰다는 뉴스 들어본 사람?
문정권 법무부는 그 청원에 응답하려는지 난민법 개악안을 내놓았다. 이미 세계에서 가장 낮은 난민안정율을 보이는 나라에서~
오래된 지배전략: 한국인과 일본인 사이에 적개심을 갖게 하듯이(정권은 비판하지��), 정규직과 비정규직 분리하여 반목 시기하게 하고(자본은 책임없어), 여혐 남혐 서로 혐오 부추기고(사회구조탓 아냐),지역 갈등 일으키고(너희들끼리 싸워)...지배세력은 이들을 내려다보며 즐겁기만 하더라...
신민들의 반응은 “토착왜구!”겠지.
하지만 일본정권과 일본인민을 분리시킬 줄 알아야. “죽창, 사지 않아. 가지 않아. 지지 않아”는 일본인 모두를 겨냥하고 있지. 그렇게 부추긴 뒤 정권끼리는 언제 그랬던가 싶게 짝짜꿍을 하지.
두 국가 인민이 지배당하는 방식 중의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