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한영인 씨는 이걸 '문학 평론가'로서 말하는 거임 '창비 편집위원'으로서 말하는 거임 '정지돈 작가 아는 사람'으로서 말하는 거임 '정지돈 작가 팬'으로서 말하는 거임 아니면 그냥 '지나가던 아저씨'로서 말하는 거임? 진짜 궁금함 어느 쪽이든 너무 주제 넘은 거 같아서
난 좀 궁금한 게 왜 문학계(ㅋㅋ;;) 여러분들은 본인들이 '당연하게' 외부자들보다 큰 리스크와 위험을 감수하고 말하고 계신 줄로 믿어 의심치 않는 건지 잘 모르겠다. 한영인 씨부터 너무 철썩 같이 그걸 믿고 계신 듯하고 강보원 씨 또한 당연하게 정지돈 씨의 상황을 큰 위기라고 책정하시는데,
우리는 고통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한다. 고통은 감정처럼 보이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고통을 비교하며 측량하는 행위야말로 감정적이다. 정지돈 작가의 상황을 이야기하기 위해 김현지 씨가 무시되어야 하고, 제도권 문학 작가의 고충을 이야기하기 위해 독자는 권력을 지닌 존재로 상정되어야 하나.
님 진짜 너무 짜쳐요... 본인 왈 메이저는 아니지만 평론으로 등단하셨다면서요. 님의 위치는 전문성에 있는 건가요, 아니면 스스로 유리하게 사용 중인 '독자'라는 위치에 있는 건가요? 되게 결연하게 말씀하시는데 그 정도 선언을 하실 거라면 본인이 누군지 정도는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것은 당연히 강보원 씨에게도 해당 되는 이야기다. 블로그 댓글을 막아놓고 꼭 필요한 말은 메일로 해달라는 말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아니 좀.... 다들 멋이 없으세요. 누구는 입을 다물라 하고 누구는 공개된 소통 창구를 막아버리고, 평론가는 향유자와 예술품 사이를 잇는 뭐 그런..
전승민 씨의 김봉곤론까지 거슬러 올라갔다가 ���제 한설 씨와 이여로 씨 사이에서 오간 트윗까지 논하자면, 너무 당연하게 공론장의 발화자들이 강자고 문학계 내부인들을 약자의 자리에 두시는 경향들이 모두 있으신 거 같은데... 그 믿음이 어떤 공통의 경향인 것 같아서 조금 당황스럽단 말이죠..
하지만 문학평론가가 문학에 관련해 발생한 공론에 대하여 직접 발언했을 때, 그곳이 지면이 아니라고 해도 한영인 씨의 발언은 당연히 공적 발화로서 기능한다. 그렇다면 한영인 씨의 '여기'는 그냥 아저씨가 커피 사진 올리는 페이스북이 아니라 공론장의 일부로 포섭되는 것이다.
김현지 씨가 '여기'에서 논쟁을 이어가는 것을 거절하며 '현지님의 공간'으로 갈 것을 권유한다. 나는 한영인 씨가 가리키는 '여기'라는 것이 무엇인지 좀 궁금하다. 한영인 씨의 게시물을 읽고 내가 처음으로 트위터에 써둔 감상은, 그래서 이게 문학평론가로서 발언하는 것인지
근데 다들 올바른 비판을 하라시는데 그걸 어디서 어떻게 하면 됨? 영인 씨의 페이스북에서 비판하면 그건 사이버 불링인거 같고 sns는 위험성이 팽배하고 곡해될 여지가 많은 공론장이며 공론장무새들의 무대는 인정 욕구의 장이고 닫혀 있고 독자는 개짱권한이 있고 계속 올바르라고들 하시는데
문단 내 성폭력 사태는 현실과 유리된 채 연명해오던 문학계가 처음으로 단죄받은 사례다. 이것은 비단 성폭력에 관한 이야기만이 아니다. 오늘 김승일 시인께서 고백한 사례를 생각해보자. '문학'이라는 오만한 단어로 포괄되는 '문학계'는 여태껏 얼마나 많은 현실의 윤리를 외면해왔나?
"문학 자체가 인용의 세계"인가? 그렇다면 현실의 것이 인용된 순간 문학이 "현실 세계의 윤리"와 어떻게 구분될 수 있는가? " 현실의 윤리로 문학을 검열하는 게 과연 좋을"지 전승민 평론가는 의문하셨는데, 김현지 씨의 피해는 문학 바깥에 존재하는가 아니면 내부에 존재하는가?
표현의 자유씩이나 미덕으로 여기는 문학계가 이토록 침묵하는 까닭은 도대체 뭔가? 자유롭게 표현하세요. 대중이 무섭다는 핑계는 대지 마시고요. 그토록 자유를 거머쥐셨으면서 그저 "모르겠다"고 관철하는 대답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가? 이것이 정말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의 문학인가?
작가와 출판사의 대처에 족족 실망하는 사람들이 평론가 개인의 눈으로 보기에 '올바르지 못한 발화'를 하는 것처럼 포착될 경우, 독자는 물론 소비자의 이름조차 박탈 당한 채 검열인이 되는 건가? 나는 이제 정말로 잘 모르겠다. 여러분들이 왜이렇게 약한 척들을 하고 계신지.
덧-
정지돈 작가가 침묵 중인 지금, 우리는 어떤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요? 어떤 대화도 나눌 수 없는 걸까요? 저는 그것을 의문하며 김봉곤 작가의 논란 당시에 쓰인 평론들을 재차 따라 읽고 있습니다. 여러분들과도 함께 읽을 수 있다면 좋겠어요. (해당 평론들은 dbpia에서 열람할 수 있습니다)
제도를 뭉뚱그려서 얘기할 때마다 조금 마법에 걸린 듯한 느낌이 드는데, 아무튼 제도라는 것이 흐릿하고 세세한 무언가로 이루어진 야트막한 집합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이 어째서 제도 바깥 사람들에게 뭉뚱그려져 보일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서는 짚고 넘어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담론 형성에 있어서 이미 1차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몇 개의 출판사가 존재하고,
1. 오직 그들이 마련한 공간에서
2. 오직 그들에 의해 승인된 자들이
3. 오직 그들의 필터링을 통과한 이야기를 하고
그 결과'만'이 공신력을 담보한 자료로 아카이빙 되는 시스템에 권력이 없을 수 있음..?
'문학'은 그러라고 존재하는 단어가 아니다. 사람을 패고, 사람을 성폭행하고, 사람의 목소리를 무시하면서 "저는 이해가 잘 안가요" 라고 무지한 척 시늉하기 위해 쓰이는 단어가 아니다. 현실의 윤리로 문학을 검열하는 게 과연 좋을까? 이것은 무지를 시늉하는 의문에 불과하다.
문학의 이름으로 현실을 외면하는 게 과연 좋을까요? 왜 현실의 얼굴로 문학을 이야기할 때만 자신 있게 허구의 가면들을 뒤집어 쓰시는 걸까? 정지돈 씨가 하남자처럼 침묵하고, 은행나무가 저작권 단가표를 제시하는 것에 '문학' 씩이나 거론되어야 하는 건가? 나는 너무 궁금한 것이다.
페미니즘 리부트를 거치며 '자유'와 '검열'이 어떤 사람들의 면죄와 변명에 동원되었는지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에 논해지는 '자유'와 검열'은 과연 누구의 무기로 쓰이고 있을까? 나는 혹자들이 너무 스스로 깨끗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것 같다.
그저 의문스러운 것이다. "문학의 핵심은 자유"라고 말씀하시는 언행이 표현의 자유를 부르짖으며 분명 존재하는 소비자 집단을 pc충이라 깔아 뭉개는 어느 성별들과 다를 것은 무엇인가? 소위 말하는 pc충의 담론은 검열이라 깔아 뭉개는 어떤 성별들과 구분될 여지는 어디에 있나.
미컬파 님은 계속 작가를 믿어달라고 손절 분위기를 만들지 말아달라고 하고 있고, 무슨 말인지 알겠음. 근데 말 안하는 상대를 두 달 정도 기다리면 누구나 상태가 몹시 나빠지는 것도 사실임. 침묵당하는 상황 그 자체에서 오는 심한 모멸감, 소외감, 배신감이 있고 스스로의 정신상태를 의심하게 됨
저도 웹툰 작업하면서 인용 관련 저작권 문의를 넣은 적이 있고, 이럴 땐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거니까 금액이 오가는 게 맞는데요. 사실 그마저도 아침달을 비롯한 몇몇 출판사는 감사하게도 금액을 받지 않으셨고..? 다 떠나서 블로그 비판글에 단가표를 보내는 건 뭐 어쩌자는 건지 모르겠음둥..
혹자는 김봉곤 - 김세희 - 정지돈의 사례를 따로 따로 봐야 한다고 말씀하시지만, 적어도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서는 하나의 줄기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의 문학이 마주한 문제다. '이전'과 '이후'를 구분짓는 것은 독자의 윤리지 문학계의 대처가 아니다.
금액을 받지 않은 출판사의 사례를 이야기하는 까닭은 상업적 이용이 명백한 와중에도 출판사의 판단을 통해 절차가 해소될 수 있다는 예시를 말하기 위함입니다. 출판사가 '당연히' 제게 친절할 이유는 없지만서도, 블로그 글에 '당연히' 비용을 청구할 정도로 법이 강제되진 않는다는 뜻이죠.
저도 웹툰 작업하면서 인용 관련 저작권 문의를 넣은 적이 있고, 이럴 땐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거니까 금액이 오가는 게 맞는데요. 사실 그마저도 아침달을 비롯한 몇몇 출판사는 감사하게도 금액을 받지 않으셨고..? 다 떠나서 블로그 비판글에 단가표를 보내는 건 뭐 어쩌자는 건지 모르겠음둥..
솔직히 전부 제도가 문제라고 하면 편해지잖아요. 첨예한 척 하고 싶을 때마다 대문자 권력 호명하면서 자긴 속하지 않은 척 글 쓰는 건 독자가 아닌 다른 분들의 장기 아니던가요..? 한영인 씨는 좀 솔직한 거 같긴 했는데 어쨌든 모두가 문단일 텐데 아무도 문단에 속해있다곤 말 안하죠?
잠깐 제 얘기를 해보자면 저는 웹소설을 연재 중이고 트위터에선 필명을 공개한 적 없지만 아마 어떻게든 까려고 해보면 제가 인지하지 못한 흔적이 발견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저는 여성향 작가도 아니고 (그렇다고 남성향 소설을 쓴다고도 생각 안하지만) 그럴 경우 이쪽 시장은
전승민 씨의 김봉곤론까지 거슬러 올라갔다가 어제 한설 씨와 이여로 씨 사이에서 오간 트윗까지 논하자면, 너무 당연하게 공론장의 발화자들이 강자고 문학계 내부인들을 약자의 자리에 두시는 경향들이 모두 있으신 거 같은데... 그 믿음이 어떤 공통의 경향인 것 같아서 조금 당황스럽단 말이죠..
전승민 평론가의 입장 인스타를 통해 확인하였고, 추후 게재될 원고를 읽을 때까지 판단을 유보할 생각입니다. 하지만 공론화가 시작된 지 이렇게 시간이 흐른 와중에 가을호 원고를 기다리는 것에 내재된 맥락을 묵과할 수는 없을 것 같네요. 문예지 바깥의 공론은 어째서 이렇게까지 건강해야 합니까
전승민 평론가의 입장 인스타를 통해 확인하였고, 추후 게재될 원고를 읽을 때까지 판단을 유보할 생각입니다. 하지만 공론화가 시작된 지 이렇게 시간이 흐른 와중에 가을호 원고를 기다리는 것에 내재된 맥락을 묵과할 수는 없을 것 같네요. 문예지 바깥의 공론은 어째서 이렇게까지 건강해야 합니까
안녕하세요. 해당 논의에 관한 아카이빙을 함께하게 된 아노윤이라고 합니다. 응정님께서 휴식이 필요하신 관계로, 혹 아카이빙이 누락된 글이 있다면 제쪽으로 DM을 주셨으면 해요. 몇 가지 누락된 글을 확인했고 저녁 중으로 업데이트 될 예정입니다. (본인께서 쓰신 타래를 제보해주셔도 됩니다!)
'현상'은 실재한다. 어떠한 해석이 이뤄지든 현상 자체는 사라질 수 없다. 어떠한 해석도 현상을 무화시킬 수 없는 것이다. 제도권 문학의 자정을 신뢰하지 않는 자들이 있다면, 그 숫자가 하나가 아니라면, 그때는 현상을 해석하는 것이 아닌 역순으로 되짚어 봐야 하지 않나 싶다.
내가 웹소설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꺼낸 까닭은 언제 어떤 방식으로 공론화가 벌어져서 내가 좆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공포를 (조금 꼰대같이 말하자면) 어쩌면 더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학계 종사자 분들은 특정 작가에게 자살하란 키워드가 실트로 올라오는 사례를 본 적 있는가?
하지만 이 모든 '계보'가 왜 완전히 다른 타인에게 부과되어야 하는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특히나 만인에게 공개된 개인이 짊어질 수 밖에 없는 취약성은 정지돈 작가 - 김현지 씨 둘 모두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bj로 활동하던 당시 있었던 몇 해 전의 루머가 호출되고 스토커에게 연락을 받는
제 웹소가 런칭하고 한 달 즈음 지났을 시기에 확인했을 때 (그 이후론 안 봣음 저도 독자를 무서워하거든요^^) 조회수가 100만이 넘었는데요; 제 광장이 더 위험할까요 여러분 광장이 더 위험할까요? 강보원 씨는 왜 당연하게 불안에 대해 모른다고 책정하시는지 진짜? 잘? 모르겠네요?
그러나 내가 알기로 침묵이 이렇게까지 허락되는 업계는 흔치 않다. 정지돈 작가를 지적하는 것이 아니다. '공적 역할' 또한 부여되었다고 이야기되는 출판사를 겨냥하는 것이 크다. 업체에 특정 사안에 대해 문의를 해도 절대 답신이 오지 않는 업계가 존재하는데 그게 제도권 문학 출판사다.
안녕하세요, 뮴님? '트위터만이 공론장이라 주장하고 싶어하는 마음으로 문예갤러리를 비하하고 그곳의 모든 의견을 의견취급하지 않으려는 이 움직임'이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말씀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문예 갤러리에서 올라왔던 tautology님의 글이 엊그제부터 공유된 것으로 알고,
혹은 트위터만이 공론장이라 주장하고 싶어하는 마음으로 문예갤러리를 비하하고 그곳의 모든 의견을 의견취급하지 않으려는 이 움직임이 얼마나 편향적인가. 문예갤러리에 올라오는 책임없는 말들이라든가 선넘은 비난과 조롱들이 이번 정지돈 사건에서 트위터에는 올라오지 않았었나? 모두가 봤다.
이것의 시발점을 이야기하자면 끝이 없다. 신경숙 표절 논란 당시를 지적해야 할지, 아니면 문단 내 성폭력이 공론화되던 당시를 지적해야 할지, 또는 그보다도 이전을 지적해야 할지 모르겠다. 물론 이 모든 건은 따로 분류해야 옳을 것이다. 하지만 어째서 누군가는 변하지 않았다고 직감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