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민 평론가의 "퀴어 일인칭을 위한 변론-김봉곤론"에서 주지해야 할 점은 1) "2010년대 후반부 페미니즘 리부트의 맥락 속에서 비평이 ‘여성’으로 젠더화되고 여성주의적 가치를 전격 지지하면서 문학의 주류적 젠더였던 헤게모니적 남성성에 대한 강렬한 비판"에서 시작 됐다는 진단에서 시작한다.
전승민 평론가의 "퀴어 일인칭을 위한 변론-김봉곤론"에서 주지해야 할 점은 1) "2010년대 후반부 페미니즘 리부트의 맥락 속에서 비평이 ‘여성’으로 젠더화되고 여성주의적 가치를 전격 지지하면서 문학의 주류적 젠더였던 헤게모니적 남성성에 대한 강렬한 비판"에서 시작 됐다는 진단에서 시작한다.
은행나무 출판사가 입장표명 한 거 약간 그 거 같다.
저녁 만찬, 나는 공들여 초대한 유명 성악가에게 노래를 청했다. 그는 들고 있던 식기를 내려 놓으며 자리에 서서 목을 가다듬었다.
"노래 시작했다~ 노래 끝났다."
이후 그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식사를 이어갔다.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전승민 평론가가 자신의 첫 평론집에, 김봉곤 작가가 담당자로 참여한 도서에... 김봉곤론을 실었다는 것은 한 사람의 독자로 전승민 평론가에게 적지 않은 실망감을 안게 하며 앞으로 발표 될 예정인 문학들 가을호의 글의 내용에 대해서도... 슬픈 방향성을 예감하게 한다.
김봉곤이 "재판 결과와 무관"하더라도 그것은 무죄를 입증하는 결정적인 단서가 되지 못한다. 그저 인과성이 불충분하다는 것에 불과하며 피해자는 자신의 '기분'을 좀 더 적확하게 피력하지 못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 못한다. 즉 기분을 따진다면 우리는 좀 더 피해자의 기분을 살펴야 한다.
누가 치마 입은 나를 불법 촬영함. 같이 있던 남자 사람은 긴 바지 입고 있고 본인도 같이 일부 영상에 촬영 됨. 내가 고소 안하고 현장에서 일 처리함. 근데 같이 있던 남자 사람이 자기도 찍혔으니까 당사자성 주장하며 내 명의로 고소함. 그럼 난 뭐가 됨? 이게 정지돈 핵심 아님?
그렇다면 여기서 작가들에게 응집력을 줄 수 있는 것은 일종의 노조 입니다. 저는 여기서 작가노조 (
@authorlabor
)는 현 상황을 어떻게 인지하고 어떠한 방식으로 공론에 참여 할 것인지 궁금합니다. 작가 노조가 작가의 권리를 보호 받기 위해 노력하는 것 외에 작가가 타인의 권리를 침해 했을 때
지적 받을 것은 본인들의 기행이기 때문이었다.
결이 좀 다르지만...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지금 정지돈 작가에게 >피해<를 입었다는 범주화에 대한 인식의 문제를 말하고 싶었다. 페미니즘이건 나발이건 다 버리고 봐도 >스토킹< 딱 한 단어만 들어도... 앞의 이야기와 비교가 안 되나?
왜 페미니즘 리부트 맥락 속에서 "게이를 주인공으로 하는 서사가 많이 소비되는 경향"이 있는가? 그것은 백레쉬에 의한 정상성의 범주 안에서 여성과 여성의 결합-레즈비언 서사 보다는 남성과 남성의 결합-게이 서사가 보다 사회 기저에 위치한 가부장제 문화를 근간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작가들에게 응집력을 줄 수 있는 것은 일종의 노조 입니다. 저는 여기서 작가노조 (
@authorlabor
)는 현 상황을 어떻게 인지하고 어떠한 방식으로 공론에 참여 할 것인지 궁금합니다. 작가 노조가 작가의 권리를 보호 받기 위해 노력하는 것 외에 작가가 타인의 권리를 침해 했을 때
심지어 그 작가는 강의도 하고 무슨 기류에 탑승 해 어쩌구 저쩌구 잘 쓰고 있다. 언급도 한 동안 잘 됐다. 그러나 동료 작가들은 그 사람의 욕을 할 뿐이지 피해 사실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았다. 그들의 이야기는 그들의 기행적인 태도였다. 이 소설의 주인공이, 모델이 나야! 라고 하면
트위터 내의 공론장이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작가라는 직업의 특수성에 있습니다. 작가들은 개인으로 활동하지만 출판사라는 곳을 통해 책으로 묶이게 됩니다. 즉, 작가는 개인/프리랜서 직업군입니다. 트위터 내의 모든 작가가 #정지돈 공론화를 요구하더라도 공론 작업이 쉽지 않죠.
2파트에서 "인물에 대한 독해는 다양할 수 있겠지만, (중략) 소설 속에서 불쌍하고, 부도덕하며, 실패했을 뿐인 부정적 인물로 그려졌다거나, 혹은 모멸감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단순하고 자기중심적인 재현이라는 평가가 정당하게 여겨질 여지는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는 주장이 합리적이기 위해서는
나를 기준으로 삼고 습작 시절(?)에 있었던 한 가지를 이야기 하고자 한다. 한 작가가 있었다. 그 작가는 자신의 주변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그들의 삶을 써 책을 냈다. 이것에 앙심을 품은 작가들이 그를 보이콧 했고 당분간 이른바 메이져에서 분리 되었다가 최근 활동 중이다.
하여 정지돈 작가 외(실례가 될까 싶어 나머지는 이름X) 후장사실중의자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며 문학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 넣는데 일부 성공합니다. 물론 이후 고비도 있고 좌절도 있지만 그건 모릅니다. 정지돈 작가 = "똑똑한 작가"의 등장과 연관이 있었던 것으로 당시 기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