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세라핌/아일릿의 라이브를 지탄하는 플로우는 정말 보기 괴롭다. 특히 대중음악비평가라는 사람들이 고리타분 한 말을 뱉을 때는 같은 비평가의 입장에서 괴롭다. 어떤 비평가는 연습부족 같은 속편한 말을 하길래 인용으로 긴 타래를 썼다 지웠다. K-Pop에 제기될 문제의 중심을 다들 놓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에스파는 이수만/유영진과 결별한 이후로 미감적 커리어하이를 갱신하고 있다. 물론 살의있는 폭력을 자행하는 여성의 형상을 그린 ‘Savage’가 나에겐 최고의 충격이나, 단지 미감적으로는 ‘Spicy’ 이후가 더 낫다. 이번 ‘Supernova’는 에스파의 모든 트랙 중 가장 기술적으로 탁월하다
기획된 장르로서 K-Pop이 어떻게 이루어지며 그게 아티스트를 보호하는데 어떻게 실패하는지. 그리고 대중이 라이브에 가지는 환상은 무엇이며 그게 K-Pop 아티스트를 어떻게 궁지에 모는지 등이 중요할 것이다. 아티스트를 비난하는 것은 비평적 사유가 아니다. 세련되게 그런 말을 쓸 바엔 욕이 낫다
결국 당신도 K-Pop 아티스트 역시 노동자라는 것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상품으로만 보는 저열한 시선을 같이 견지하는 사람이었을뿐. 애초에 사생활을 트집잡으며 아티스트를 내쫓기 위해 수많은 근조화환을 도배한 이 사태를 여성문제의 틀로만 볼 수 있는 당신의 안온함이 부럽습니다. 실망스럽군요.
라이즈 전 멤버 승한의 탈퇴와 관련, 짧은 시위 과정에서 새로운 가능성이 열렸다. 여성 인권이 존중받지 못하는 케이팝 산업 내에서, 그중에서도 최약자인 여성 팬들 사이에 연대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점은 큰 의의가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의사를 다양한 방식으로 명확하게 표현했다.
르세라핌의 경우 mma등에서의 성공으로 스스로를 과신하여 코첼라의 성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기획의 실패 문제가 더 크다. 아일릿은 새삼스러운 문제가 아니다. 음악방송 등지 라이브 문제는 90년대부터 제기되던 것인데, 그들이 다 프로답지 못해서 생긴 것이겠는가. 오히려 (뒤에 이어짐)
민희진의 기자회견이 환멸나는 가장 큰 이유는 그녀의 전략이 그녀 자신을 지키는 데에 가장 유효한 방법들로만 들어차있기 때문. 심지어 뉴진스와 아일릿을 동시에 궁지에 모는 그 술수마저도! 이렇게 불리한 상황에서도 그녀는 자신이 어떻게 이 자리까지 올라올 수 있었는지를 제대로 보여준 셈이다
첨언 : 요며칠 플로우를 볼 때 르세라핌/아일릿을 지탄하는 이들 중에선, 자신의 지적임을 수단으로 하여 단지 여성혐오를 세련된 글로써 수행하고자 했던 이들도 있었다. 제발, 제발, 그러지 마라. K-Pop의 여성혐오가 노골적임과 은밀함을 자유자재로 통과하며 아티스트를 옥죈다는 사실을 알면서.
르세라핌/아일릿의 라이브를 지탄하는 플로우는 정말 보기 괴롭다. 특히 대중음악비평가라는 사람들이 고리타분 한 말을 뱉을 때는 같은 비평가의 입장에서 괴롭다. 어떤 비평가는 연습부족 같은 속편한 말을 하길래 인용으로 긴 타래를 썼다 지웠다. K-Pop에 제기될 문제의 중심을 다들 놓치고 있다.
심지어 좋은 라이브에 대한 환상도 요즈음에는 그릇된 것이다. 단지 아티스트가 기술적으로 탁월해서 그를 경외하듯 즐기는것이 좋은 라이브라는것은 옛말이다. 떼창문화나 모쉬핏 등 관중들의 춤 문화는 어떻게 설명될것인가? 랩 한마디 안하고 롤링라우드에서 최고의 라이브를 만든 Playboi Carti는?
하이브의 요구대로 민희진이 축출된다면 뉴진스는 커다란 변화를 맞게 될 것이다. 설령 그녀들이 원치 않더라도 말이다. 이 역시 K-Pop을 다른 장르와 달리 봐야 하는 이유다. K-Pop 아티스트의 주체성은 이토록 유약하다. 그를 인정하는 것이 K-Pop의 주체성 복각을 위한 비평의 첫번째 과제가 된다.
이수만/유영진이 구축했던 에스파의 세계를 필요한만큼만 계승한 켄지의 작사와 뎀조인츠의 작편곡이 기가막히게 맞아떨어졌다. 에스파 및 SMP의 팬덤에게도, 그렇지 않은 청자에게도 모두 만족스러울 작품. 이것은 고작 선공개에 불과하다. 다가오는 정규음반을 더 기대하게 만든다. 과연 어떨까?
세 문단의 연결고리가 미약할뿐더러, 작품비평에서 작품에 대한 논의는 희박하다. 오히려 소승근은 작품을 비평하는 대신 이진아가 대중음악에 임하는 태도를 가르치려 든다. 옹졸하고 교만하기 그지없다. 이 글의 게시가 승인된것 또한 개탄스러울 따름이다. 비평은 아티스트를 옥죄는 수단이 아니다.
기름 투하. 뉴진스와 아일릿은 각자의 기획이 탁월함에도 (심지어 아일릿이 뉴진스의 표절이 아님에도!) 상호참조적 논의의 가능성이 절단나고 말았다. 마치 선전포고같은, 입장문을 통해서! 뉴진스와 아일릿 그리고 그들의 팬들은 이제 서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이게 K-Pop의 비참한 현실이다.
하이브의 요구대로 민희진이 축출된다면 뉴진스는 커다란 변화를 맞게 될 것이다. 설령 그녀들이 원치 않더라도 말이다. 이 역시 K-Pop을 다른 장르와 달리 봐야 하는 이유다. K-Pop 아티스트의 주체성은 이토록 유약하다. 그를 인정하는 것이 K-Pop의 주체성 복각을 위한 비평의 첫번째 과제가 된다.
K-Pop 산업의 메스꺼운 기묘함으로 인해 아티스트들이 노동자이기도, 상품이기도 한 채로 기업과 팬덤 양측에 내몰린다는 그 복잡성은 꽤 중요한 문제입니다. K-Pop의 문제는 단일한 관점이 아닌 복합적인 여러 관점을 같이 교차시켜 고민해야 합니다. 노동/환경/여성 등의 여러 문제틀을 동시에.
그런데 기묘하긴 하다. 사기업이 자회사를 감시하겠답시고 검찰마냥 압수수색을 자행하고, 그것이 언론에 의해 과시될 정도로 정당화된 것이라니. K-Pop의 중심이 삼국시대에서 하이브 사단의 천하통일로 옮겨가는 것 같은 지금, 자꾸 하이브와 관련된 기묘한 소식이 들려 지켜보는 중...
이게 어떻게 아일릿이 표절그룹이라는 해석으로 가는거죠? 민희진이 아일릿이 뉴진스를 표절했다는 의혹에 뉴진스 편에서 대항했다는 것이 충실의무에 부합한다는거지 아일릿이 표절했다고 단정하는 것이 아닌데요? 법리적 쟁점의 핵심이 거기에 있던 것도 아닌데? 눈 똑바로 뜨고 정신 좀 차리세요.
또 애초에 ‘여성 팬’이 K-Pop 산업 내 최약자라니. 산업 내 여성 노동자들도 아니고 여성 팬들을 굳이 짚어낸 이유도 궁금하네요. 트윗의 형식적 한계상, 저 문장만 놓고보면 당신은 K-Pop에 대한 이해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걸로 보입니다. 그동안 그렇게나 글을 많이 써냈으면서 말이죠.
8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흑인을 위하면서도 아시아인과 성소수자에 대한 불쾌한 농을 던진 위선자 크리스 락. 이번 시상식에도 자가면역질환을 앓아 삭발한 제이다를 향한 무례한 농을 던졌다. 분노한 윌스미스의 펀치. 솔직히 통쾌했다. 세계로 생중계되는 공식 석상에서 저런 농은 있어선 안된다.
초반부터 사진기자 중 대부분을 퇴장시킨 탓인지, 내가 파악하기론 민대표 기자회견의 실시간 업데이트는 텐아시아에서만 이루어지고 있다. 기자회견을 보고 있자니, 화가 나면서도 혀가 내둘러진다. 진짜, 정말 여러 의미로 영리하고 약은 사람이다. 이 판에서 요행으로 입지전적이 된 인물이 아니다.
이것이 정녕 비평이라면, 그래도 근거가 있겠지 싶어 이진아의 과거 인터뷰 및 발언들을 찾아보았다. 하지만 도무지 소승근이 이런 악평을 쓰게 된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근거가 있다한들, 글이 작품비평의 탈을 쓰고 있다면 결코 이런 식으로 쓰여서는 아니된다. 이건 소승근의 욕심이다.
노동자가 하나의 모습으로만 표상되지 않음을 간과한다면 노동운동은 반드시 패망한다. 노동자는 여성일수도, 퀴어일수도, 이주민일수도, 장애를 가졌을 수도, 그 외 다른 어떤 얼굴이든지 가질수도 있다. 기업과 적대하기위해 여성주의를 저버리고 ‘2030 한국남성’의 얼굴로만 전략을 세우는꼴이라니.
@soonmyun
이건 반드시 짚어야겠군요. 르세라핌은 로잘리아를 표절한 적이 없습니다. 용어의 오남용과 언론의 부풀리기가 많은 아티스트를 다치게 하고 있습니다. 대중음악이 샘플링과 레퍼런스/오마주 없이 순수한 ‘창작’으로만 구성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애초에 대중음악의 생리가 그렇게 작동하지 않습니다
아일릿 라이브 사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악플이 달린다는 사실 그 자체다. 하이브가 그에 농간을 펼친다는 것은 나중 일이다. 팬덤을 위한 라방을 안할수도 없는 일이고, 그 라방 전에는 깨끗한 댓글만 달렸을까? 민희진은 최고의 전술가다. 그녀가 훈연하는 청어에 모두가 각기 다른 군침을 흘린다.
생각지도 못한 관심들 감사합니다. 모두의 말씀 배우는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K-Pop을 올바르게 대하는 태도가 무엇인지 저마다의 생각들을 봤습니다. 과연 정답이란건 있을까요? 있다고 해도, 찾기 쉽지 않겠죠. 그러니 전 계속 집중하고자 합니다. 여러분도 즐거이 K-Pop을 향유하게 되길 바랍니다.
르세라핌/아일릿의 라이브를 지탄하는 플로우는 정말 보기 괴롭다. 특히 대중음악비평가라는 사람들이 고리타분 한 말을 뱉을 때는 같은 비평가의 입장에서 괴롭다. 어떤 비평가는 연습부족 같은 속편한 말을 하길래 인용으로 긴 타래를 썼다 지웠다. K-Pop에 제기될 문제의 중심을 다들 놓치고 있다.
처음엔 다들 우스개로 말하는줄 알았다. 하이브 단월드 플로우는 보기 심히 당황스럽다. 모두가 마치 집단적 착란상태에 걸린듯 방언을 터뜨리고 있다. 하이브 사단이 문제적이라는 데에 동의하나, 그것을 이렇게 해소하려 들다니.. 음모론은 항상 성마르고 저열할 뿐이다. 결국 맞았다고 쳐도 말이다.
+ 더해서 내가 대중음악비평가라는 관점을 추가하면, 민희진의 발언으로 표절이 주관적 감상으로만 판단/단죄되는 것에 탄식이 나왔다. 내가 다회 강조하는 바지만, 현재의 대중음악에서 ‘순수한 오리지널리티’는 위험한 허상이다. 손쉽게 유희열을 매장했던 대중의 분노가 걷잡을 수 없이 뻗치고 있다
물론 윌이 조금 더 침착하게 대처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도 생각. 하지만 내 눈엔 중대한 결례를 범하고도 즉각 사과하지 않은 크리스보다 분노를 표해 크리스의 행동이 잘못된 것임을 세계에 각인시키면서도 다른 참석자들에게 빠르게 사과한 윌과 그런 윌에게 조언한 덴젤 워싱턴이 천배는 더 멋있다.
2023.12월부터 2024.05월까지의 한국대중음악들 중 음반과 트랙 각각 다섯 작품씩을 여러분께 추천드립니다. 아직 2024년 지금까지의 베스트로 꼽을만한 작품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이 꼭 저의 베스트 목록은 아닐 수 있습니다. 허나 이들 모두는 훌륭합니다.
(발매순 정렬)
단언컨대 2010년대 세계 대중음악의 가장 중심에 있던 장르. 삶의 위험을 감각화하는 힙합의 방법 중 청각화에 힘을 쏟은 장르. 여러 이유로 극단적 고평가와 저평가가 공존하는 장르. 트랩.
이 타래는 트랩의 에센셜 작품들을 추천합니다. 며칠 내지 몇 주에 거쳐 여러 작품을 추천할 예정.
요즘 제 피드에서 자주 보이는 두가지 플로우에 대해 말을 얹고 싶네요. 켄드릭 라마. 힙합 역사상 최고의 아티스트 중 하나인 그를 통해 창작의 개인사 변용과 성노동 문제를 봅니다. 아래 사진이 문제적인 가사들이고, 왼쪽은 「Keisha's Song」, 오른쪽은 「Sing about me...」입니다.
켄드릭 라마 POP OUT 콘서트 소식을 보고 들으며 : 드레이크 커리어는 그야말로 박살이 났다. 공연에 방문하고 무대에 오른 이들의 명단은 드레이크의 숨통을 조일 것이다. 그가 발디딜 틈은 더욱 좁아졌다. 이것은 축제이지만, 동시에 장례식이다. 드리지를 무덤에서 꺼내 토막내는 현장이다.
8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흑인을 위하면서도 아시아인과 성소수자에 대한 불쾌한 농을 던진 위선자 크리스 락. 이번 시상식에도 자가면역질환을 앓아 삭발한 제이다를 향한 무례한 농을 던졌다. 분노한 윌스미스의 펀치. 솔직히 통쾌했다. 세계로 생중계되는 공식 석상에서 저런 농은 있어선 안된다.
불매운동은 언제나 소비자들에게 가장 편리한 투쟁수단이 되었다. 대중음악에선, #성범죄자음악사지도팔지도맙시다 와 같은 해시태그가 그렇다. 불매를 통해 그들의 수익을 떨어트리는 방법은 그들을 곤궁에 빠트리는데 효과적일 수 있다. 그러나 불매운동은 동시에 유약하며, 위험한 방법이다.
허나 모든 사람과 이런 류의 일엔 항상 공과 과가 있다. 난 민희진이 아무 의혹도 해명하지 못했다 어쩌고 하는, 민희진이 말한 ‘개저씨’들이나 하려는 말을 하고싶은게 아니다. 민희진의 과는, 스스로와 뉴진스라는 여성들을 지키기 위해 아일릿이라는 또 다른 여성들을 수렁으로 몰아넣은 데에 있다.
“가장 ‘개인적’인것이 가장 ‘정치적’인것”이라는 60년대 페미니즘 구호를 인용하던 래디컬들의 극우화는 갈데까지 가서, 이젠 아예 정치라는 개념에 대한 이해도 하려하지 않은채 자신들의 모든 운동을 비정치화시키려고 한다. 이젠 트위터에서 도는 래디컬 논의를 ‘정체성 정치’라 부르기도 민망하다.
누군가는 윌의 행동이 멋있지 않다 할 수 있지만, 글쎄, 세계가 보는 와중에 소중한 사람이 그런 모욕을 겪는다면 나같아도 후려갈겼다. 윌의 행동이 옳다 그르다를 따지기 이전에, 초점은 크리스의 무례에 먼저 맞춰져야 한다 생각. 더군다나 그는 주먹을 맞고도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다. 이 무슨...
결국 사과문을 쓰게 만든다.
마치 독두꺼비처럼 유독함을 필요조건으로 삼는 케이팝팬덤의 생리가 카리나의 머리를 조아리게 했다.
“내가 너에게 돈과 인생을 갈고있으니 너도 그만큼의 예를 표하라!”
조직된 숭배현장에 아티스트는 그저 복속된다.
이것도 케이팝장르의 조건이자 문제다.
아픈 일이다.
이 사람같은 랟들은 카디비 작품이나 카디비 인터뷰는 하나라도 보고 이런말 하는가 싶다. 카디비는 그녀가 성노동자였다는 사실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며, 그 과거를 부끄러워하길 바라는 사람들에게 부모욕을 할 정도다. 심지어 그 과거가 자신을 구원했다고도 하고. 그 이유로 그녀는 (이어서)
회견에서 케이팝의 음반시장 구조를 논하며 정확한 비판을 행했던 민희진이, 케이팝의 모든 그룹이 상호참조와 적극적인 레퍼런스를 통해 작품화되며 악의적인 표절 공격으로부터 모든 그룹이 자유롭지 못하단 사실을 모를리없다. 심지어 뉴진스도 그렇다. 민희진은 뉴진스를 지키려 아일릿을 희생했다
SMP라 불리는 음악은 ‘난잡한 세련됨’이라는 양립불가능해 보이는 두 감상을 하나로 성립시킨다. 자식의 어질러진 방을 본 엄마가 자식에게 청소의 깔끔함을 칭찬하는 혼란스러움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 점에서 Stamp On It은 전작보다 더 지향점에 가까이 있다. 악곡적으로 그렇다. But 가사는 영...
하이브 사단에 대한 반감과 민희진에 대한 지지로 아일릿을 공격하는 것은 전혀 문제에 도달하지 못하며, 확전만을 낳을 뿐이다. 그것은 민희진 본인에겐 성공적이다. 허나 뉴진스 역시 언제 부메랑을 맞을 지 모른다. 뉴진스와 아일릿은 그저 피해자이다. 내가 일전에 회견이 환멸난다 적었던 이유다.
민희진의 기자회견이 환멸나는 가장 큰 이유는 그녀의 전략이 그녀 자신을 지키는 데에 가장 유효한 방법들로만 들어차있기 때문. 심지어 뉴진스와 아일릿을 동시에 궁지에 모는 그 술수마저도! 이렇게 불리한 상황에서도 그녀는 자신이 어떻게 이 자리까지 올라올 수 있었는지를 제대로 보여준 셈이다
<앨범 리뷰> LE SSERAFIM, 『UNFORGIVEN』 [written by. coloringCYAN] (2023/05/10)
“『UNFORGIVEN』은 전작의 성취에 비하면 굉장히 실망스러운 작품이다. … (그러나) 당장의 아쉬움만을 두고 쉽사리 기대를 저버리는 것은 이 자라나는 신록들에겐 큰 실례가 될 것이다.”
아일릿의 커리어는 시작부터 파산하게된 셈이다. 이제 그녀들이 어떤 작품을 내놓건 간에, 그녀들은 뉴진스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하던대로의 작품을 낸다면, 모두가 여전히 표절한다 손가락질 할테다. 반대로 아예 콘셉트를 틀어버리면, 오히려 그 역시 표절을 의식한 것이라 비난받을 것이다
르세라핌의 신보가 로잘리아를 카피했다는 일련의 주장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본작의 가치를 낮추진 않는다. K-Pop의 오리지널리티는 환상이고, 본작에 자리한 치밀한 서사와 그와 교차되는 르세라핌의 맥락은 뉴진스와 아이브 뒤로 저평가되던 그녀들을 단숨에 올해의 유력한 신인 후보로 올린다
임시 채널을 통해 갑자기 등장한 빌리프랩의 입장 영상은 말문이 턱 막힌다. 아일릿은 뉴진스를 표절하지 않았으며, 표절 낙인이 대중들에 의해 자의적이면서 쉽게 내려진다는 주장엔 동의한다. 허나 영상에서 잊을만하면 뉴진스를 물고 늘어지는 그 모습이 도리어 자신들의 발목을 (이어짐)
아일릿과 뉴진스의 유사 정도마저 표절이라 인정될 정도면, 모든 그룹이 거기서 자유롭지 못할겁니다. 민희진이 그것을 꺼낸것이 영리한 수였기도 하고요. 근데 다 떠나서 일단 글은 좀 똑띠 읽어야지... 배임이 아닌 배신은 인정되었고 민 제외한 나머지 이사는 해임되었는데 이게 마냥 좋을 일입니까
무릇 작품을 평가하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자신의 평가 역시 평가대상이 될수 있다는것을 알아야한다. 비평한다는 직함을 내세울거라면 더욱 그렇겠지. 설령 자신의 평가가 도전에 부딪혀도, 거기에 맞서던가 아니면 위 사항을 인정하여 내버려두던가하는 편이 좋다. 그저 치워버리는 면피는 최악이다.
제가 일전에 파란노을의 2집을 비판하는 리뷰를 〈온음〉에 게재한 것을 두고, 모 커뮤니티들에서 잊을만하면 계속 저를 파란노을까(...)라고 하시는 것을 봅니다. 하지만 작년 총결산 올해의 록 트랙에 ‘개화’를 추천하고 글을 쓴게 저입니다. 저는 작품을 우선 볼 뿐, 파란노을을 저평가하지 않아요.
<트랙 리뷰> Kendrick Lamar, 「We Cry Together」 [written by. coloringCYAN] (2022/08/27)
“Kendrick은 우리 역시 여성/페미니즘의 문제로부터 외부자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반드시 내부자임을 자각한 상태로 문제의 전체를 직시해야 한다는 사실을 경고하는 것이다.”
민희진의 기자회견이 환멸나는 가장 큰 이유는 그녀의 전략이 그녀 자신을 지키는 데에 가장 유효한 방법들로만 들어차있기 때문. 심지어 뉴진스와 아일릿을 동시에 궁지에 모는 그 술수마저도! 이렇게 불리한 상황에서도 그녀는 자신이 어떻게 이 자리까지 올라올 수 있었는지를 제대로 보여준 셈이다
공교롭게도 이 나라에서 일반적으로 여겨지는 페미니즘은 그들이 굉장히 꺼리는 국힘/더민주 류의 우익과 다를바 없어졌다. 남성 계급 및 계급화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남근에 대한 적대감을 최우선한 채 여성을 계급으로서 공고히 한다. 그러고는 마치 정당 정치처럼 계급을 내세우며 우경화된다.
이번 한대음도 같은 우를 범한다. 대표적으로 권익도가 작성한 소개글. Bleach와 같이 팝으로도, 전음으로도 분류될 수 있을 음반을 다룰 땐 보다 섬세해야 한다. 록과 전음이 ‘팝 프리즘’에 통과되었는데 결과가 어째서 일렉트로닉 필드에 있는가? 서술만 보면 차라리 팝이라 하는게 설득력이 있다.
솔직히 말해 나는 몇주간 그것이 매우 고까웠다. 성에 입성한 민희진의 욕설이 신화가 될때 허세련의 욕설이 비난받으며 성에서 쫓겨나는 그런 모습이 그랬다. 그것 또한 정체성정치의 여러 취약함 중 하나다. 이번 사태로 민희진이 여성으로서 이룩한 성과와 균일한 비율로, 과오도 조명되어야 한다.
쌍수를 들며 환영. K-Pop에는 다른 장르와 엄격히 구분되어야만 하는 고유의 색채가 있다고 꾸준히 주장해온 입장에서 한대음의 이번 K-Pop 장르 신설은 분명한 의의를 가짐. 다만 그것이 많은 이들이 우려하는대로 단지 '아이돌 팝 음악의 격리'와 같이 되지는 않았으면. 그는 앞으로 지켜볼 일.
월요일 잘 보내셨나요❓
2022 한대음이 새로운 소식을 들고 왔습니다. 🧐
♨️두둥
한대음 케이팝 부문 신설 😵💡
자세한 내용은
📣2022 제19회 한국대중음악상 후보발표
🗓2022-02-09(수) 14:00
📺한대음 유튜브 생중계
#한국대중음악상 #한대음 #후보발표 #케이팝
#kpop
키드밀리의 정규앨범 『BEIGE』의 후반부 두 트랙 「25」와 「Kid milli interlude.」는 앨범의 다른 트랙들을 잊게 만든다. 전자는 한국힙합에서 사운드클라우드-랩을 짝사랑한 트랙들 중 최고수준에 있으며, 후자는 키드밀리가 자신의 모든 무기를 활용한 토털 패키지. 초회감상때 정신이 아득했다.
✨디플러스기아✨
순위: 4/10
낭만으로 시작해 정규때는 부진하며 우릴 낙담시켰소. 하지만 플옵에선 kt전 젠지전 좋은 경기력으로 우릴 떨리게 했소이다. t1전은 허무한 경기력으로 매우 실망스러웠소이다.
아쉽소. 허나 재구매 의사는 가득하오. 우리는 여전히, 계속 이 팀을 사랑하기 때문이오.
[𝟐𝟎𝟐𝟒 𝐋𝐂𝐊 𝐒𝐏𝐑𝐈𝐍𝐆]
24년의 봄, Dplus KIA의 첫 장이 마무리되었습니다.
변덕스러운 봄날이었지만, 우리가 함께하고 있다는 믿음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동안 팬들에게 받은 따뜻한 응원과 믿음을 원동력으로 삼아, 앞으로 있을 여름과 그 너머에 펼쳐질 Dplus KIA 를 위해 더욱더
정체성정치의 연대로 난공불락의 성을 쌓을때, 그 성 안으로 입장하는자격은 분노가 허하는 한에서 엄중히 식별된다. 이 경우, 민희진/뉴진스는 입장자격이 되나 아일릿은 그렇지못하다. 혹은 르세라핌도 마찬가지다. 이 역시 계속 일어나는 일이다. 소수자/성노동자/성향자 등의 여성이 쫓겨날때 같이
RM의 신보는 전작보다 고점은 높지만 기복이 더 심해진 모습이다. RM은 전작의 좋은 평가에 안주하기보단 모험하기를 택했다. 그럴듯한 Pop이었던 전작과 달리 신보엔 다소 도전적인 터치가 있다. 두 작품이 결이 다르므로, 신보가 전작에 비해 좋지 않음에도 나는 이것을 퇴행이라 말하진 않을 것이다
예부터 지금까지 케이팝의 세계와 콘셉트는 골때리는 부분이 있다. 세일러문으로 분한 아이브도 그랬고, 웬 민트초코 아이스크림과 싸우는 에스파의 이번 비디오도 그렇다. ‘Supernova’와 이어지는 부분이 있는진 몰라도, 마지막엔 기어이 민초단이 되는 전개라니 참 골때린다
이젠 도무지 트위터 알고리즘을 믿을 수가 없다. 몇주전까지는 관심도 없고 하지도 않는 주식 얘기들만 보여주고, 최근엔 이상한 소리하는 파란딱지들만 보여주더니, 엊그제부턴 래디컬의 트윗들을 덜컥 보여준다. 내가 꺼리는 것들로만! 하루에 한시간도 안해서 알고리즘이 개판이 난건지 뭔지...
민희진의 공은 크다. 회견을 썰풀이로 만들며 관행을 부수고, 그를통해 ‘개저씨’들에 대한 분노를 생생히 전했다. 사회에서 여성은 경영인의 자리까지 오를지라도 배척당한다는 메시지. 그런 여성의 고통은 계속 일어나는 일이다. 민희진은 상징이 되었고, 많은여성들이 함께 분노하고, 위로받았다.
칸예의 돈다 리스닝파티 당시 라이브로 보던 전 충격이었습니다. 복면쓴 덩치가 팔 휘적거리는거만 보다 끝났으니까요. 그래서 이번 내한도 ‘리스닝파티’라길래 예매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웬걸 이 양반 이번에는 킬링벌스를 찍고 갔더군요. 과거 제 자신의 따귀라도 때리고 싶은 심정입니다. 하...
혐오자들이 트랜스젠더, 성노동자, 그 외 여러 여성 내 소수자들을 오직 혐오에만 근거하여 까는 트윗 = 알티 5억회, 마음 10억회
그에 합당한 전거를 갖춘채 그 혐오에 피해입은 사람들이 조목조목 반박하는 트윗 = 알티 10회 마음 5회
이런 좆같은 꼬라지가 너무 많이 보인다. 넌덜머리나는 트위터.
한국힙합어워즈는 후보를 네티즌 추천순으로만 정렬하여 뽑던가? 당황스러울 정도로 뽑을 사람/작품 등이 없다는 사실은 어쩌면 2022년의 씬이 그만큼 부진했다는 뜻이 될지 모른다. 특히나 올해의 아티스트는... 후보 중 누구도 ‘올해의’를 달 폼이 아니었다 생각했기에 끝내 투표를 못했다...
에스파의 “Armageddon”은 기대를 충족한다. 전반부엔 f(x), 후반부엔 레드벨벳을 에스파의 색에 기가막히게 착종시키며 훌륭한 감상을 자아낸다. 특히 타이틀 트랙 ‘Armageddon’은 정말 기가 막힌다. 힙합을 사용하는 걸그룹의 작품들 중 최고 수준의 감흥을 만들어냈다. 에스파도 이런 것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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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는 단지 기약 없는 기다림을 언도 받아 수용하는 장소가 아닌 것이다. 외려 그 기다림에 기약이 없으리라는 것을 그 스스로 폭로하고, 그 기다림에 희망을 불어넣는 모든 위로를 묵���시키는 장소다. 항구에서의 기다림의 성격을 결정하는 측은 항구측 자신이다.”
페미니즘 리부트가 수면 위로 거세게 몰아치던 당시 여성들이 “페미니즘 모르면 공부하세요”라는 말로 혐오자 남성들을 골려먹던 때를 아직도 기억한다. 난 그 전술이 꽤나 유효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은 사유와 반성이 없는 여성주의가 판을 친다. 이제 저 공부하라는 말은 누구에게 가야할까?
박영현의 임신 중절 강요 사건에도 그렇고, 렉카들을 통해 까발려진 ‘A대표’의 성범죄와 폭행, 갈취 등의 사건에도 그렇고, 그 피해사실과 피해자들을 보며 “역시 한남은 만나면 안된다” 류의 말들이 오간다니. 그게 ‘이성간 연애 중 범죄 피해’를 당한 피해자들을 보며 감히 지껄일 소리인가?
어제 무서운 얘기를 하나 들었는데, 용산왕초가 거부권 쓰는데도 계속 특검법이랑 각종 민주당 법안들이 저주인형마냥 새 회기에 상정되고 통과되어 돌아오는 거 보고 상당히 빡쳐있는 상태고, 결국엔 열받아서 친위쿠데타 일으킬거라는 얘기였다. 계엄령 내리는 것도 안하고 바로 군을 움직일 거라고.
물론 이 타래가 불매운동에 동참하는 이들을 비난하거나 하는 목적이 있는 글은 아니다. 나도 대중음악의 문제들을 의식하며, 윤리적으로 결격된 이들이나 작품에 대한 지탄을 거리끼지 않는다. 훈계하거나 하는 목적도 아니다. 다만 우리는 모두 문제가 무엇인지 안다. 더 나은 전술이 필요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