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섬망이 너무 심해 나흘간 합해 두시간도 자지 못했다. 잠시 존 사이 바늘을 또 뽑아버렸고 지친 나는 울면서 함께한지 1년만에 처음으로 간병인을 불렀다. 나갈 준비를 하니 엄마가 묻는다.
“나갈건데 돈은 안 필요해? 엄마가 부쳐줄게.”
“너 옷깃 뒤집혔다. 새 옷 좀 사서 입어.”
…
15년 전 엄마는 혼수상태에 있었다. 정신을 잃기 전 마지막으로 내게 한 말이 “넌 특별한 아이야. 잊어버리지 마.” 였는데… 병원에서도 천명이라 할 만큼 아무렇지 않게 깨어났었고, 이제 다시 한 번 그 말을 듣고 싶다고 생각했다.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이 잠자는 지금의 엄마를 보며.
밥하는 사람은 누구에게나 나눌 줄 알아야한다고, 외할머니는 시골 댁으로 찾아오는 사람을 결코 마다하지 않았다.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지만 사는 것이 나눔이라 아기를 가진 고양이도 눌러살게 되었다. 거지라고 무시당한 사람들과 외가 식구들은 같이 앉아 밥상을 나눴다. 그게 당연하다고.
노란여우 (norandill) 를 사랑해주시는 많은 트친분들께 말씀드립니다. 노란여우님이 지금 많이 아프세요. 아직 결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아마 힘들고 긴 싸움이 될 것 같습니다. 디엠을 주셔도 시력때문에 읽기가 힘드시니 제게 말씀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용기내어 잘 싸워볼게요. 고맙습니다. :-)
난데없이 심한 욕을 얻어들으며 발로 차이며 깨물려 피멍이 들고 살점이 뜯어지기도 하고. 매일이 다 말할 수 없는 날들의 연속이다. 그런데도 사랑한다는 한마디에 속절없이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날 알아보지도 못하면서. 그저 자기 곁에 있어준다는 이유 하나로 사랑을 말하는 그에게.
안녕하세요. 저는
@NoranDill
노란여우님의 큰딸 나오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엄마가 조금 어려운 수술을 하셨어요. 지금은 회복중이십니다. 당분간은 꽃과 고양이들을 트친 분들께 보여드리지 못할 수도 있을거예요. 그래도 큰 수술은 아니니, 혹시나 걱정하실까 트윗 남깁니다. 쾌유를 빌어주세요. :)
엄마는 오늘로 방사선/항암 1주일째 입니다. 방사선 후유증으로 오른쪽 마비가 조금씩 오고 체력이 많이 떨어져서 수시로 근육 운동을 같이 하고 있어요. 최근엔 포도가 맛있다고 자주 드시고요. 그래도 아직까지는 너무 걱정하진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마음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약 먹이다 손을 세게 물려서 응급실갔다가 파상풍 주사를 맞고 돌아가는 길. 피를 뚝뚝 흘리면서도 부끄럽게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 약 신약 실험 중이라 버리면 안되는거라고 꼭 먹여야한다고 엉엉 소리를 내어 울었었다. 나오면서도 그의 입 안에 고인 피를 닦아주지 못해 마음이 걸렸고.
아직도 그날의 꿈을 꾼다. 자취생이던 나는 쌀 두 포대를 사서 손바닥만한 주먹밥을 잔뜩 만들었다. 매일매일. 유모차를 끄는 젊은 부부와 손을 잡고 잔디밭을 걷는 학생들, 촛불을 들고 걸어가던 사람들... 작은 아이가 손을 내밀며 주먹밥을 달라 해서 주머니의 사탕도 내주었던 날. 그리고 그날 밤.
조리고등학교에서 만난 절친이자 기정떡의 백오기정을 만든 친구의 꿈. 부모님이 수확한 곡물로 아주 작게 시작한 아이. 시장 구석에서 허름한 가게를 수리하며 직접 페인트칠을 하던 친구. 모든 것을 스스로 만들어 나가겠다고 했다. 왜이렇게 용감해? 라고 묻자 말한다.
"여기엔 내가 있잖아."
유명 업장들의 조건은 대부분 비슷한데, 기술 알려주는데 뭘 더 돈을 벌겠다고 난리… 라는 인식이 팽배해있음. 호텔도 비슷하다. 특성화 고교 학생들이 막 갈려나가는 이유도 그것. 업장에서 학생 실습 기간을 겨울에 많이 잡아주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크리스마스, 새해에 저임금 알바 구하려고.
나 나폴레옹 베이커리 다닐때
19년도 식비 2800원
20년도 식비 3300원 받음 ㅋ
이마저도 백화점 구내식당에서 카드찍고 먹은것만 내역 보내면 입금해주고 아니면 돈 안줌
그리고 밥 맛 없어서 컵라면 1500원짜리 사먹었더니
3300원 맞춰서 먹으라고 계산하기 힘들어서 무조건 맞춰먹어야 준다고 그럼
죽으려 했을 때 겨우 살아남은 것은 뭔가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지금까지 길고 긴 시간을 거쳐왔어도 어떤 변화없이 매일이 같았다. 그러다 오늘, 청소를 하다 문득 깨달았다. 살아졌던 건, 평범한 일상을 살기 위해서. 어제와 오늘과 내일 모두, 매일이 기적이었다.
크게 밀려오는 푸른 물을 보면서 그동안 단 한번도 흘리지 않았던 눈물을 주룩주룩 흘렸다. 온통 환한 오후의 빛 아래 사람이 그렇게 많은데도 서늘하고 두려워 외롭기만 했다. 하지만 살아내야만 한다. 오늘을 살아내면 내일이 올 수 있다. 내일을 견뎌내면 모레를 볼 수 있다.
사람 때문에 실망하고 사람 때문에 고통스러워 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겨울은 봄의 가능성을 갖고 태어난다. 겨울에 돋는 새눈은 언젠가 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을 믿지 않으나, 결국엔 사람으로 구원받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대신 내일을 믿자. 사람을, 사랑을 믿자.
그 때 손을 덜덜 떨고 있는 나의 손을 잡아준 이름 모를 사람. 서로 알지도 못하는 사이면서 또 알려주지도 않은 스크럼을 짜던 이들. 그날 낮의 평화로움을 잊을 수 없고, 그날 밤의 두려움도 잊을 수 없다. 어쩌면 우리는 더 어려운 지경에 처했거나, 언젠가는 그렇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시골은 날이 밝으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잠이드는 곳이다. 그래서 해가 게으른 계절이 되면 도무지 몸을 움직이기가 힘든 것이다. 눈을 뜨고 천장을 멍하니 쳐다보다 이불 안의 온기를 겨우 털고 일어났더니 엄마가 벽난로에 불을 지펴 놓았다. 겨울 쥐처럼 양껏 모아둔 나무들, 새벽의 작은 행복.
딸기 뷔페나 시즌 상품들은 대부분 겨울에서 봄 사이에 절정이지만, 밭의 노지 딸기는 5월이 절정이다. 이제 끝물인 딸기를 산더미처럼 따서 잼을 만들었는데 딱 세 병이 나왔다. 내내 불 앞에서 거품을 걷으며 저어주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만 완성된 딸기잼을 담아두면 마음이 아이처럼 들뜬다.
엄마 (@ norandill) 드릴 닭발곰탕을 끓일 때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게 된다. (사진은 혐짤이라 생략) 질리지 않아해서 다행… 인데 최근 간식만 먹고!!! 밥을 안 드시려하여 가족들의 감시를 받고 계심… 스테로이드 때문인 것 같은데 세상에 엄마가 숨어서 과일을 먹는 걸 보게 되다니…
도시에서 시골로 이사를 오고 나서야, 흙이 인간의 시작이라는 것을 알았다. 비가 오기 전, 축축하고 부드러운 흙을 손에 쥐면 쌀가루로 만든 떡 반죽처럼 뭉쳐졌다가 푸스스 풀어진다. 초록으로 돋아나는 새싹은 어떠하며, 지렁이와 개미들의 터인... 흙은 식량 뿐 아니라 생의 조상이다.
원래대로였다면 세월호를 탔어야 할 단원의 사촌동생은 아직도 그 친구들의 이름을 제대로 부르지 못한다. 그 시간들이 아직도 두렵다고 했다. 그러면, 그러니, 우���가 대신 기억할게. 바다에서 뭍까지 오르도록 잊지 않을게.
#세월호10주기 #어둠은빛을이길수없다
#기억은힘이세지
#Remember0416